2021년 11월 21일 일요일 오후 베를린 내방
"무슨 책 읽었어? 나한테도 조금만 책 내용이랑 네 생각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주말에 내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이 무엇인지 말해주면 좋겠다고.
-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
나는 전자책을 읽을 때 주로 '밀리의 서재'라는 사이트를 이용해. 한 달 구독료를 내면 원하는 만큼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거든. 책을 여러 권 동시에 읽는 나에게 알맞은 플랫폼이야. 며칠 전에 <어제보다 늙은, 내일보다 젊은>을 읽었어. 은퇴한 독문학과 이창복 교수의 책이었어. 글이 참 좋더라.
책에 나온 구절을 소개할게.
"가끔 자식들과 함께 식사할 때 10년 후의 꿈과 20년 후의 세상을 말하는 젊은 그들의 대화는 마치 나와는 관계없는 딴 세계의 동화처럼 들리고, 나는 어느새 나의 옛 전설을 홀로 반추한다.
하루를 무사히 마친 데 감사하며 잠들고, 아침에 눈을 뜨고 기지개를 크게 켜며 일어설 때면, 귀중한 선물처럼 나에게 새롭게 주어진 오늘에 다시 한 번 감사하며 하루의 일과를 보람 있게 보내자고 다짐한다. 할 일은 많고 남은 시간은 적다."
(전자책 10/296)
요즘 우리 아버지는 남은 10-20년을 건강하게 살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셔. 아버지 에피소드를 소개해볼게.
나는 이번에 한국에 있으며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어.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타지에 살았거든. 독일에 있으면서도 가끔 부모님과 긴 통화를 하긴 했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아니니까 제약이 있었지. 한국에서 보낸 지난 6개월 동안 부모님과 시간적 여유를 두고 대화한 게 참 좋았어. 특히 아버지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어. 아버지는 삶을 잘 마무리하는 계획을 세우고 계시더라. 슬픈 이야기는 아니야. 아버지는 건강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고민하고 계셔.
건강
건강을 챙기는 아버지 이야기를 해볼게. 요즘 아버지는 매일 아령을 들며 팔 근육을 만들고, 벽으로 팔굽혀 펴기를 하셔.
나: 우와~ 아빠! 근력 운동하시는 거야?
아빠: 응~ 나이가 드니까 근육이 있어야겠더라.
내가 살면서 아빠가 근력 운동하시는 모습 처음 봤거든 ;-) 그렇다고 아빠가 운동을 전혀 안 하신다는 것은 아냐. 젊을 때부터 등산 다니고, 또 부지런하셔서 매우 건강하셔. 아령으로 근력 운동하는 모습을 자랑스레 보여주시는 아버지가 조금 귀엽게도 보였어. 아버지는 남은 10-20년을 건강하게 보내기 위해 운동을 하신대.
의미 있는 삶
의미 있는 삶을 고민하는 아버지 이야기도 들려줄게. 아빠는 몇 년 전부터 일을 줄이셨거든. 요즘 평생교육원을 다니며 인문학과 철학 강의를 들으셔. 성경도 읽으시고.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행복한 삶은 무엇인지에 관심이 많으셔. 나누는 삶에 대해서도. 아버지는 강의를 듣고 철학자 책을 읽으며 새로 알게 된 내용을 엄마와 나에게 말씀해주시기도 하시지. 나는 가끔 아빠가 해주시는 이야기가 지루해서 대충 들을 때도 있어 :-) 엄마는 아빠 이야기 들으면서 졸기도 하시더라. 눈을 살짝 감고 아빠 이야기를 듣는 엄마의 노련함! 그런 부모님 모습이 참 정겹고 재미있었어.
아빠는 남은 10년, 길게 보면 20년을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실 수 있을까 고민하시지. 이것은 20-30년 후에는 아빠가 세상에 안 계신다는 의미이기도 해. 나에게 10-20년 후는 너무나 당연한 미래거든. 나는 그때 어떤 삶을 살까 생각하며 현재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기도 해. 이창복 작가의 <어제보다 늙은, 내일보다 젊은>을 읽으며 부모님을 떠올렸어. 또 내가 부모님 나이가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도 생각해보았어.
에세이 읽는 즐거움
다른 구절도 소개해볼게.
"문제는 어떻게 이 삶의 매듭들에 깊숙이 숨겨진 진실을 노인의 지혜로 찾아내어 삶에 새로운 의미로 다시 투영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문학은 이 같은 노력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특히 에세이는 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서 사소한 일상의 이면에 숨겨 있는 삶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허구가 아니라 관찰을 통해서 새로운 의미의 형태로 창조하는 데 가장 적절하다. 따라서 에세이에서 발굴된 진실은 개인적 삶의 특수성을 넘어서 우리 모두의 삶에 영향을 주는 보편성을 지니게 되고, 시간의 한계를 넘어 우리에게 삶의 이정표 역할을 할 것이다."(전자책 12/296)
내가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를 이창복 작가가 잘 표현해주었어. 나는 사소한 일상 속에 숨겨 있는 삶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에세이를 읽거든. 에세이를 읽으면 작가와 대화하는 기분이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이지만 카페에 마주 앉아 대화하는 기분이랄까?
우리도 만나면 밥 먹고 카페에서 대화하잖아. 대화하며 힐링도 받고 웃기도 하고 어떤 문제에 대해 함께 분노하기도 하지. 알록달록 구슬을 모은다는 내 이야기에 네가 힐링받았다고 했던 거 기억나? 집에 가는 길 내 마음도 따뜻해지더라. 힐링받았다는 네 이야기에 나도 위로 받았거든. 또 네가 <꽃들에게 희망을> 책을 소개해주었던 날도 기억나. 네 이야기 들으며 나는 긴 여정을 떠나는 애벌레를 상상했지.
긴 글이 되었다. 나에게 '무슨 책 읽었어? 나한테도 조금만 책 내용이랑 네 생각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말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나도 글 쓰며 참 좋았어.
2021년 11월 21일 일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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