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6일 금요일 정오
넷플릭스에서 <걸스 오브 막시 Moxie> (2021) 영화를 보았다. 얼마 전 친구들과 인종차별에 대해 이야기한 게 떠올랐다. 작년에 젠더를 주제로 한 토론도 생각났다.
나는 오랫동안 페미니즘을 '급진적인 페미니즘'으로만 알았다. 급진적인 페미니즘 활동이 잘 보이니까 나도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성차별을 처음으로 이해한 것은 독일에서 소수인종으로 살아보면서다. 하나의 차별을 경험하니 다른 차별이 보였다.
독일에 온 지 2개월 즈음 되었을 때 일이다. 길을 걸어가는 내 옆으로 초등학교 고학년 다섯 명이 지나갔고, 그때 나는 눈 옆에서 차가운 무엇인가를 느꼈다. 내 앞을 지나가던 한 명이 나에게 딸기맛 아이스크림을 뱉은 것이었다. 그때 가슴으로 이해했다.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 근로자가 이런 감정을 느끼겠구나.'
독일에 오기 전 한국에서 외국인 근로자 관련 영화도 보고 다문화 가정을 연구하는 교수님의 수업도 들으면서 내가 어느정도 그들의 삶을 알고 있다 생각했다. (나는 이 경험을 했을 때 바로 인종차별이하는 생각을 했다.하지만 한국 친구들과 대화하며 새롭게 얻은 시각은 인종차별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머리로만 이해한 것과 가슴으로 이해(경험)한 것은 다르더라. 몇 걸음 걷다가 벤치에 앉아 생각했다.
'독일을 떠나야할까?
... 하지만 지금까지 만났던 좋은 독일 사람이 더 많았는데.'
나는 떠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때의 경험을 의미있는 일이라 여기게 되었다. 보다 많은 사람을 이해하게 되어었으니까.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포함한 모든 차별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경험하지 않으면 가슴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안타까운 일이다. 피부색이 밝은 독일 사람이 인종차별을 경험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여성이 느끼는 차별을 남자가 경험하는 일도 매우 드물다. 그들이 백인이 아닌 인종을, 남성이 여성을 이해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들에게 그런 기회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나는 고맙게 생각한다.) 나도 딸기맛 아이스크림의 차가움을 느끼기 전까지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차별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미셸 푸코가 말한 보이지 않는 권력도 어디에나 존재한다. 작년에 독일어 토론 모임에서 한국인 남성 두 명과 (나를 포함한) 여성 두 명이 젠더를 주제로 토론했다. 한국인 남성이 정한 주제였다. 그는 페미니즘을 주제로 토론하고 싶었지만, 누군가에게 페미니즘이 너무 강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고려하여 젠더라 정했다고 했다. 나는 토론하며 많이 배웠다. 한국의 수직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남성도 차별받고 있다는 것을(한국의 모든 곳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수평적인 문화를 가진 곳도 많다). 여성 차별만을 강조하다보면 그곳에서 소외되는 남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페미니즘보다 인권이 앞서야한다는 것을. 동물권과 자연 보호도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은 여기에서 글을 마친다.
'일상 Alltag > 하루하루가 모여 heu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합창곡 - 못잊어 (김소월 시, 조혜영 작곡) (0) | 2021.03.28 |
---|---|
단소 불며 놀기 - 폴킴 '너를 만나', 타이타닉 주제가 (0) | 2021.03.28 |
기록하는 삶 - 독서 모임에서 소개하는 나의 기록 이야기 (음성으로 듣기) (0) | 2021.03.24 |
1년 전 이맘때 (2) | 2021.03.24 |
블로그에 모인 800편의 글 (0) | 2021.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