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시작하는 스페인 순례길 7 - 독일 시골 개와 호기심 많은 소

2020. 11. 3. 06:05일상 Alltag/베를린 순례길 Berliner Jakobsweg

 

기록용으로 만든 영상이라 따로 편집 작업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베를린에서 시작하는 스페인 순례길' 시리즈는 포스팅 하나에 주제 한 가지를 쓴 글이었다. 오늘은 일기처럼 시간 순으로 나열해본다.)

 

 

한 달 반 동안 순례길을 못 걸었다. 오늘 새벽에 명상과 요가를 하면서 문득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를린에서 시작하는 스페인 순례길은 언제나 계획 없이 걷는다. 우리 집에서 시작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오늘은 지난번에 도착한 트로이엔브리첸Treuenbrietzen이라는 도시에서 시작했다. 기차 앱을 보니 집에서 1시간 반이 걸린다고 나와있었다. 아침 8시 18분 기차를 타고 트로이엔브리첸으로 향했다. 기차에서 잠시 딴생각을 하다 못 내릴 뻔했다. 깜짝 놀랐을 때는 이미 기차 문이 닫혀 있었다. 기관실에 양해를 구했다. 기관사가 "조금만 늦었으면 못 내릴 뻔했네요." 웃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작은 도시를 다니는 작은 기차라 가능한 일이었다. 

 

기차에서 내리니 가을이 나를 반겼다. 기차역 풍경이 한 달 반 사이에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호수를 따라 걸었다. 

 

 

 

 

호기심 많은 소. 한 걸음 한 걸음 내 쪽으로 다가온다

 

 

지도를 들고 계속 걷다 보니 멀리 소가 보였다. 내가 다가가자 젖소들이 하나 둘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사람이 거의 없는 길이라 젖소들도 내가 신기했나 보다. 내가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으니 젖소들이 하나 둘 내 쪽으로 온다. 나는 젖소들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한참 사진과 영상을 찍은 후 젖소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진흙탕 길을 조심히 걷는데 저 멀리 큰 개 보였다. 나를 발견한 개는 무섭게 짖었다. 반려인에게 

 

"수상한 사람이 보여. 이리 좀 와봐!"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독일 개가 저렇게 무섭게 짖는 것은 처음 봤다(독일 개는 순하고 풀이 죽어있다. 강아지 학교에 너무 열심히 다녀서 그런걸까?). 나는 얼어붙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개는 한참을 짓다가 다시 반려인을 따라갔다. 진흙탕 길을 조심조심 걷다 보니 엄청나게 큰 트랙터가 지나간다. 트랙터 안에 있는 여자가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든다. 나도 손을 흔들었다. 뒤에 오는 더 큰 트랙터를 운전하는 남자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나도 손을 흔들었다. 독일 시골에서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먼 거리에서는 이렇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게 매너인가 보다. 트랙터 뒤로 엄청나게 큰 개가 보였다. 개는 나를 흘낏 보고는 트랙터를 따라갔다. 무섭게 짖던 개도 나타났다. 그 개도 트랙터를 따라가던 모양이었다. 멀리서 나를 봤을 땐 무섭게 짖더니 가까운 거리에서는 느린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강형욱 훈련사의 TV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개가 저렇게 걸어오는 것은 무슨 의미지? 공격하겠다는 의도는 아닌 것 같았다. 꼬리를 흔들며 살며시 내게 다가 온 검은 개는 반갑다는 표시를 했다. 트랙터를 운전하는 반려인이 개를 불렀다. 검은 개는 들은 척도 안 하고 내 주위에서 잔디 냄새를 맡았다. 반려인이 계속 개 이름을 부르며 "제발 좀 이리 와!" 몇 번 반복했을 때 개는 느긋하게 트랙터 쪽으로 갔다. 

 

(다음 내용은 이어지는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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