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9일 토요일 늦은 오후 베를린 P
지난 5일 동안 게으름이 찾아왔다. 예전에는 게으름이 찾아오면 의지로 이겨내고자 했다. 하지만 이제는 게으름을 그냥 둔다. 다 이유가 있어 찾아온 거니까. 마음 저 깊은 곳에는 '이 시기에 게으르면 안 되는데' 목소리가 아직도 남아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변화는 천천히 찾아오니 말이다.
게으름이 오기 전 이미 알고 있었다. 게으름이 올 것이라는 걸.
최근 몇 년 게으름을 분석해보니 다 그만한 이유가 있더라.
1. 신체적 에너지를 소진했다.
2. 부담되는 일이 있다.
게으름은 왜 왔을까?
1. 신체적 에너지를 소진했다 -> 작은 번아웃
신체적인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버렸을 때 게을러진다. 몸의 당연한 반응이다. 작은 번아웃이라 할 수 있다. 학기 초 너무 열심히 강의를 듣고 여러 모임을 가면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작은 번아웃이 왔다. 운동이나 사람들과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너무 열정적으로 (원래 성격이 열정적) 임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일을 할 때 힘이 빠졌다.
2. 부담되는 일이 있다 -> 미룬다
대학 지원, 집 계약서 보내기 등 삶의 중요한 변화가 예상되는 일에서 나타난다. 대학 지원 시기 마지막 날까지 기다리다 지원서를 보낸다거나 인턴 지원서, 집 계약서를 제출 마지막 날까지 미룬다. 처음에는 그냥 미룬다고만 생각했지만 잘 살펴보니 의식 저 깊은 곳에 '맞는 선택일까? 이게 될까?' 생각이 있더라.
이제는 나의 게으름 패턴을 좀 알아서 게으름이 찾아오면 느긋하게 반응한다.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어떤 마음의 움직임도 모두 좋은 것이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마음속에 게으름이 찾아왔을 때, 부지런한 마음으로 바꾸려고 무작정 덤벼든다면 에너지를 소모하고 마음고생만 할 뿐입니다. 반면 마음속에 게으름이 휘몰아칠 때 일단 그 자체를 아름답고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면 다음 단계에서 훨씬 나은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게으른 마음을 평온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부지런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바꿀 수 있을 뿐 아니라, 설사 마음이 금방 바뀌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마음을 품은 채 자신이 할 일을 묵묵히 해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시찬 -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28쪽)
이번 게으름은 신체적 에너지를 소진해버려 찾아왔다. 지난 금요일 순례길을 걸었고 토요일에도 이어 걸었다. 주말마다 순례길을 걷는 나에게는 하루 3시간 루트가 적당하다. 매일 순례길을 걸으면 몸이 적응해서 하루에 20km도 걷지만, 주말마다 걸을 때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너무 무리하면 안 된다. 하지만 일요일에 다섯 시간이나 걸어버렸다. 걷는 것만 다섯 시간이고 가고 오는 시간까지 합쳐 9시간 가까이 밖에 있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떼제 미사에 갔다.
오래 걸으려고 한 것은 아니고 중간에 베를린 집으로 돌아올 버스 정류장이나 기차역이 없었다. 달리 생각해보면 내가 지난 두 달 동안 그만큼 많이 걸었다는 뜻이다. 도심에서 많이 벗어났기 때문에 기차역이나 버스 정류장이 자주 없는 거니까. 지난 토요일이 순례길 두 달 째이자 15일 차였다(순례길은 주말에만 걷는다).
그렇게 피곤한데 저녁에 떼제 미사는 왜 갔는지 물어본다면 가고 싶어서 갔다고 답하겠다. 나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그중에서 떼제 성가를 가장 좋아한다. 2014-2015 연말 연초에 체코 프라하 열렸던 떼제 유럽 모임에서 합창단에 있었다. 노래 부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았다. 오랫동안 악기를 하며 몰랐던 내 몸으로 내는 소리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떼제 유럽 모임을 다녀온 후 대학교 합창단 동아리에 들어갔다. 재미있었다. 하지만 노래가 길고 어려웠고 출석체크를 너무 빡빡하게 해서 결국 그만두었다. 나는 공부하는데 독일 친구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했으므로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없었다. 베를린에 와서 동네 합창단도 시작했지만 코로나 여파로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두 달 전부터 주말마다 스페인 순례길을 걷고 저녁엔 떼제 노래를 들었다. 나만의 작은 의식을 만들고 싶었다. 5년 전 부모님과 스페인 순례길을 걸었을 때 매일 새로운 동네 저녁 미사에 갔다.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베를린에서 순례길을 시작한 후에는 저녁 미사를 가기 어려웠다. 코로나 때문에 미리 미사 참가신청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고, 집에 와서 밥을 먹으면 시간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샤워를 여유롭게 하면서 떼제 성가를 듣기로 했다. 나에게 꼭 맞는 작은 의식이었다.
떼제 성가를 야외에서 부를 수 있다니! 내가 좋아하는 떼제 성가를! 순례길을 시작한 지 두 달 정도가 되니 진짜 미사에 가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갔다. 피곤함을 무릅쓰고 갔다.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떼제 성가를 부르며 즐거웠다. 부를 때 즐거운 노래는 떼제 성가라는 걸 마침내 깨달았다. 마치 내가 명상에 푹 빠진 후 인도 라자 명상센터, 선불교 명상 센터에 갔다가 '나는 아직 이 정도로 길게 명상을 할 시기가 아니다' 깨닫고 매일 15분 아침 명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일요일
금요일, 토요일 순례길을 걷고 떼제 미사를 다녀온 후 일요일에 푹 쉬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정이 세 개나 있었다. 아침 10시 번역 수업, 오후 1시 반 독서 모임, 저녁 7시 탄뎀(언어교환). 일주일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독서 모임과 탄뎀은 취소했어도 되었을 것이다. 일주일 전의 나는 현재의 나보다 좀 덜 현명했나 보다.
무엇보다 하고 싶었다. 번역 수업은 (수업료 때문에서라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독서 모임은 책이 너무 재미있었다.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를 읽었다. 화가이자 미술 평론가인 주인공 심시선 여사의 그녀의 삶과 글이 흥미로워서 꼭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저녁 7시 탄뎀이라도 미루었으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탄뎀은 내가 독일어를 배울 뿐 아니라 친구에게 독일어를 가르쳐주는 시간이기도 하기에 책임감이 있었다.
빡빡한 일요일 일정을 소화한 나는 그대로 뻗어버렸다.
게으름 매뉴얼
1. 그냥 두기
어떻게 사람이 항상 부지런할 수 있나?
게으름이 찾아오면 그냥 둔다. 올 만해서 왔기 때문이다. 이 방법이 가장 마음 편하다. 게으름 시기를 짧게 보내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2. 착실히 보낸 하루에 대한 글을 쓴다
최근에 알게 된 방법이다. 부지런히 하루를 보낼 때는 나를 위해 따로 기록할 시간이 없다. 나를 위해 기록하는 글은 일기나 블로그에 쓰는 글이다. 블로그와 일기는 미래의 나에게 쓰는 편지이다. 둘의 성격은 거의 같다. 일기는 나만 읽고 싶은 글이고, 블로그 글은 남이 읽어도 되는 글이다. 가끔 그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하지만.
게으름이 찾아왔을 때 부지런히 보낸 시기를 기록하다 보면 '아! 내가 항상 게을렀던 것은 아니지! 다시 부지런한 시기가 돌아오겠구나.'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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