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신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을 때

2018. 8. 12. 20:34일상 Alltag/하루하루가 모여 heute

2018년 8월 12일 괴팅엔 (녹음: 악기 박물관 금관악기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유네스코 뉴스의 "기사 듣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포스팅을 녹음해보았습니다.)




요즘 내 자신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주일째 논문을 못 썼다.

계획대로라면 이번주에 소논문과 논문을 열심히 써야했다.

글을 못 쓰니 마음이 불안하고 걱정이 앞섰다. 내가 학사를 끝낼 수 있을까?


일요일마다 일하는 악기박물관에 오기 싫었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었다.

8시, 8시 15분, 8시 30분 알람이 울렸고

결국 마지막 8시 45분 알람이 울리기 몇 분 전 일어나 샤워를 하고 급하게 악기박물관에 왔다.


버스정류장으로 오는 길 드는 생각:

내가 왜 일요일마다 일을 한다고 했을까

공부하기도 벅찬데 일까지 해야하나

지난번에 그만둔다고 할 껄...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린 후 은행에서 돈을 찾고 성당에 들러 잠시 앉아 있었다.

음악학 건물(악기박물관은 음악학과 건물 3층에 있다)에 도착하니 마음이 조금 풀린다.


다시 이곳에 왔구나. 날씨가 참 좋네.








사실 내가 이번주 글을 못 쓴 이유는 지난주에 너무 무리를 했기 때문이다.


작년 6월 말부터 학교 글쓰기 센터를 다니며 글 쓰는 방법, 시간 관리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글쓰기 센터에 가서 소논문과 논문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또 글을 쓰며 어려운 점, 시간 관리, 교수님 면담 준비 등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본다.

사회학 소논문을 시작으로 음악학 소논문을 썼고 얼마전부터 학사 논문을 시작했다.


보통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글을 쓴다.

4번을 집중해서 쓰는데 1번이 45분에서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매일 다르지만 대략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10 - 11시 > 글쓰기 1

11:30 - 12:15 > 글쓰기 2

점심 식사

14:00-15:00 > 글쓰기 3

15:30 -16:30 > 글쓰기 4

(17시 이후: 글 쓰는 것 외에 논문에 필요한 일하기 - 복사, 교수님 면담 준비 등)


매일 집중해서 글쓰는 시간이 최소 4시간이 된다.

처음에는 4시간이 적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쉬는 시간, 딴짓하는 시간 빼고 

집중해서 글을 쓰는 순수한 4시간을 채우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고 토요일엔 쉰다. 

빨래하고 방 청소하고 장보고... 논문 쓰는 것과 관련 없는 일을 한다.

빨래가 매우 중요하다.

토요일에 빨래를 하면 일주일 입을 옷이 생긴다.

그러면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일요일에는 아침 8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9시 15분에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악기박물관에서 일한다.

방문객이 많지 않은 날은 논문을 쓸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된다.

방문객이 많으면 계속 일을 한다.

6시간 동안 별 것 안 하는 것 같은데도 일이 끝나면 피곤하다.


이렇게 나의 일주일은 일요일부터 시작된다.

일요일에는 일하(며 운이 좋으면 논문 쓰)고 주중에는 도서관에서 논문 쓰고 토요일엔 쉰다.

주말이 토요일 하루 뿐이니 토요일을 잘 쉬려고 한다.

틱낫한 스님의 게으른 날(Lazy Day)처럼.





얼마전부터 이것이 깨졌다.

논문을 빨리 쓰고 싶어 마음이 바빴다. 

평일 늦게까지 도서관에 있었고 토요일에도 학교에 갔다.

날씨가 너무 더웠다. 에어컨이 없는 곳에서 공부하다보니 빨리 지쳤다.

일요일에는 일이 끝나고 저녁에 계속 약속이 있었다.

(친한 언니가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어 도와줄 것이 있었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할 이야기가 많았다.

내가 만나고 싶어서 간 것이었다.)


특히 지난주에는 토요일 하루종일 도서관에 있었고

일요일 일이 끝나고 학교에서 밤 11시 30분까지 소논문을 썼다.

그리고 나니 월요일에는 더이상 글을 쓸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 일주일 계획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주중에 학교에서 논문을 쓰고 토요일에는 집안일, 일요일에는 악기박물관에서 일하기.


그런데 너무 욕심을 부렸다.

더 많이 더 빨리 글을 쓰고 싶어 무리했다.

나의 능력은 거기까지인데 마음이 급했다.


내 기대보다 나의 능력은 모자란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이게 나인걸.


그리고 학생이라는 역할이 내 전부는 아니다.

나의 수많은 역할 중에 하나가 학생일 뿐이다.

글을 잘 못 쓴다고 논리적인 사고가 부족하다고 독일어가 부족하다고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


나는 부모님의 소중한 딸이고

독일 다른 도시에서 공부하는 동생의 든든한 누나이고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의 소중한 사람이다.

고모님의 사랑스러운 조카이며 

악기박물관의 성실한 조교다.


물론 공부를 하러 독일에 왔으니 가장 큰 목표가 학업이지만

학생이 나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고 응원해줘야겠다.

'오늘도 잘 하고 있어'라고.













학교에서 논문을 쓰다가 집중이 잘 안 되거나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때 법륜스님 즉문즉설을 찾아본다.

오늘 아침 영상을 보고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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