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낭만

2023. 9. 24. 11:47일상 Alltag/하루하루가 모여 heute

2023.09.24 일요일 아침 한국집

 

 

저녁 11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다.

막걸리와 부침개를 드시며 기분 좋아진 부모님이 내게 물어보셨다.

„오늘 어땠어?“ 

„잔디밭에 앉아 밤하늘을 보며 신나게 이야기했어. 낭만이 있던 순간이었어.“ 

 

 

지난주 스터디그룹을 만들었다. 사람은 모였고, 어디서 만날지 결정하면 됐다. 토요일 저녁 피크닉을 제안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한 명은 몇 주 전 학부를 졸업했고, 한 명은 석사를 하던 중에 일을 시작했으며, 한 명은 한 달 전 박사가 되었다. 골똘히 고민하며 연구하고,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게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회사 생활에 잘 맞지 않은 성격과 습관을 가진 이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조직에 들어가 익숙하지 않은 일을 시작했다. 매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으며 고군부투하던 중이었다. 

 

대학원 생활과 회사 생활은 다르다. 사회과학대학원 생활은 혼자 결정해야하는 게 많다. 혼자 연구 주제를 정하고, 수많은 참고 문헌을 보며 논문에 인용할 문헌을 스스로 정해야하며, 하루 24시간을 스스로 계획해서 써야한다. 느리고 성과 없어 보이는 삶이라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용기를 주어야한다. 

 

회사 생활은 바쁘다. 내 일도 잘 해야하고, 팀원들과 함께 하는 일도 바로 처리해주어야한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지금 당장 끝내야하는 일이 생긴다. 고민할 시간이 없다. 바로 실행에 옮겨야한다. 대학원 생활을 하다가 들어온 신입은 모든 면에서 서툴수 밖에 없다. 일하는 방식도, 생각하는 방식도, 표정도 다르다. „내가 이 일에 맞지 않나?“ 생각이 수 없이 든다. 

 

나 혼자 하던 고민을 친구들과 하니 속이 뻥 뚫린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치킨과 만두, 물, 고구마, 토마토를 먹으며 밤하늘에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았다. 왜 이런 낭만과 여유를 더 자주 즐기지 못했을까? 지금이라도 즐겨야지. 

 

우리의 대화이다.

1.

„내가 부족하게 느껴져. 내가 하는 것을 인정(recognition)받았으면 좋겠어.“

„너 정말로 잘하고 있어 (You do very well). 옆에서 보면 너 정말로 잘하고 있어! 내가 인정할 수 있어.“

 

2.

„나는 내가 정말로 부족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 오랫동안 조직생활을 한 사람들에게는 내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일테고, 나는 항상 그 피드백을 들으니까. 하지만 지난 몇 달 동안 내가 성장한 것을 보면, 전혀 모르던 분야를 이 정도 하고 있는 걸 보면 나 잘하고 있는 것 같아.“

„맞아. 너 잘 하고 있어. 내가 널 회사에서 처음 봤을 때 나는 네가 그 일을 몇 년 한 줄 알았다니까!“

„하하! 맞아. 네가 그랬지! 나 몇 년 일한 사람 같다고. 그때 나 3개월 차였는데.“

 

3.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길러진 성격과 습관이 지금 하는 일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나는 지금 내가 일하는 곳에서 필요한 어떤 면은 부족하지만, 정말로 잘하는 게 있어. 지금은 돈을 벌어야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해야하지만 말이야.“

„그럼! 네가 정말 잘하는 일이 있지. 그것을 항상 생각하는 게 중요해.“

 

대화 도중 Deep Purple - Smoke On The Water 이 들렸다. 버스킹을 하던 락그룹이 하는 연주였다. „나 이 노래 좋아해!“ 친구는 Deep Purple 독일 공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좋은 사람들과 깊이 대화하는 낭만이 있는 토요일 밤이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