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소중한 학생들

2023. 6. 11. 23:23일상 Alltag/하루하루가 모여 heute

2023.06.11 일요일

선선한 여름 저녁 선풍기를 틀어 놓은 사진관에서

 

 

 

 

작고 소중한 학생들

‘작고 소중한 월급’이라는 표현이 있다. 너무나 적은 금액이라 들어오자마자 사라지는 소중한 월급. 지난주부터 나에게도 작고 소중한 학생들이 생겼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아니고, 돌보고 관리하는 학생들이다. 지난 글에서 내가 영문 잡지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영문 잡지 외에도 나는 한국어 수업 업무도 담당한다. 한국어 수업 운영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짠다. 수업 시간과 한국어 선생님 배정, 포스터 제작, 온라인• 오프라인 홍보, 수강 신청자 전화•이메일 문의 답변, 한국어 선생님과 소통, 교재와 강의실 장소가 담긴 수업 확정 이메일 보내기, 출석부 뽑기, 기관에 처음 오는 학생에게 시설 안내, 주차권 판매까지. 작은 어학원을 운영하는 느낌이다.

 

나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 혼자 결정할 수 없다.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준 선임에게 조언을 구하고, 팀 리더에게 진행 상황을 알린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작은 어학원 업무를 시작했다.

 

학생 모집에 어려움이 있었다. 6-8월에 열리는 여름학기가 휴가 시즌과 겹쳤기 때문이다. 수업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 원어민 선생님이다. 한국에서 열심히 일한 그들이 자신의 나라로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어 수업 첫날

수강 신청 마지막 날 극적으로 한 명이 더 등록했다. 최소 인원 4명이 채워져 한국어 기초반이 열리게 되었다. 이 학생들은 나에게 작고 소중한 존재다. 한국어 수업에 등록해 준 고마운 학생들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내 업무를 못할 뻔했다. 학기 첫날 나는 일찍 출근해서 강의실을 정리했다. 물티슈로 책상도 닦았다. 바닥에 있는 작은 쓰레기도 주웠다. 화장실에 화장지도 넉넉하게 가져다 놓았다. 학생들을 위해 작은 선물도 준비했다. 내가 편집하고 디자인한 영문 잡지와 시청에서 만든 가이드북이다. 지난주에 나온 따끈따끈한 잡지에는 6월 뉴스, 여행, 레시피, 에세이, 교육, 문화예술에 대한 글이 담겨있었다. 시청에서 만든 가이드북은 손바닥만한 귀여운 크기인데 비자, 의료, 교육, 주거 등 다양한 정보가 담겨있었다. 나는 영어와 한국어 가이드북을 학생들에게 주었다.

 

“(영어로) 너를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 이 잡지에는 재미있는 글과 여행 정보가 담겨 있단다! 이건 이번에 새로 나온 가이드북이야. 영어와 한국어판을 준비했어. 네가 한국어를 배우니까 한국어판도 필요할 것 같아서.”

 

쉬는 시간에는 학생들에게 도서실을 소개했다. 화장실 위치도 알려주었다. 이웃 도시에서 차로 운전해서 온 학생에게는 할인 주차권을 판매했다. 한국어 수업 첫날을 무사히 마무리했다.

 

 

 

 

과거의 나와 그 누군가

모든 과정에서 독일어를 처음 배우던 내가 떠올랐다. 독일에서 공부할 어학원을 찾던 나, 이메일로 수업에 대해 물어보던 나, 계좌이체로 수강료 보내던 나, 떨리는 마음으로 레벨 테스트를 보던 나, 수업 첫날 들뜬 마음으로 어학원으로 향하던 나, 기초반 강의실을 찾던 나, 화장실에 가던 나, 어학원 지하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던 나,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나, 수업 끝나고 친구들과 교재를 사러 가던 나, 도서관에서 숙제하던 나.

 

내가 독일어를 배우던 때 어학원에서 일하던 누군가는 페이스북에 독일어 수업 홍보 글을 올렸겠지? 학생들에게 수업 안내 이메일과 수강료 입금 확인 이메일도 보냈을 것이다. 카드 결제기 사용법을 익혔을 것이고, 강의실 문 앞에 각 반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나에게 화장실은 복도 끝에 있다고 알려주었을 것이고, 커피 자판기는 지하로 내려가면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 누군가가 나에게 해준 것을 지금 내가 학생들에게 해주고 있다. 첫 학생들이라 나에게 더욱 소중한 존재들. 그들과 함께 할 여름학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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