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나보고 가식적이라고 했다

2022. 10. 6. 03:00일상 Alltag/가족 Familie

2022년 10월 5일 목요일 저녁 베를린

 

 

동생과 나는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다. 동생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나는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며 타지로 떠났다. 그 이후로 계속 떨어져 살았다. 나는 동생이랑 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동생은 나랑 산 기억이 거의 없단다. 너무 어려서 생각이 잘 안 난다고 했다. 우리는 10년을 따로 살았다. 동생은 군대 가기 전 독일에 사는 우리집에 놀러왔다. 3주 동안 동생과 나는 둘이서 유럽 여행을 했다. 여행하며 서로를 새롭게 알아갔다. 여행 마지막에 싸웠다. 10년 동안 따로 살다보니 우리는 서로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군대에 다녀와서 동생은 독일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우리는 자주 만나고 대화하다 보니 친해졌다. 동생이 말했다. 

 

동생: 나는 처음에 누나가 너무 가식적이라 생각했어.

 

나: 내가? 어떤 부분이 가식적이었어?

 

동생: 이야기하다 보면 누나가 반응할 때 표정이랑 말이 너무 가식적이랄까?

 

가식적이라... 내가 무엇이 가식적이란 말인가? 나는 가식적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왜 내가 가식적으로 보였을까?

 

 

 

 

 

 

 

몇 년 후 동생이 말했다.

 

동생: 누나! 내가 누나 가식적이라고 했잖아. 내가 음대 나온 친구를 알게 됐거든? 여자애인데 누나랑 비슷해. 누나보다 반응이 더 가식적이야.

 

나: 정말? 정확히 어떻게 가식적이라는 거야?

 

동생: 일단 누나처럼 반응이 크고, 진짜 그렇게 생각해서 반응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나: 아! 반응이 크다는 의미야? 그럴 수 있지. 음악을 하다보면 그렇게 되거든. 악기를 연주할 때 악보에 피아노(p, 작게 혹은 여리게)가 있으면 더 작게, 포르테(f, 강하게)가 있으면 더 크게 연주해야 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음악적인 표현을 더 과장해서 해야 해. 그렇게 해야 무대에서 하는 연주가 관객에게 전해 지거든. 무대가 있는 연주홀은 크잖아. 그곳에서 나 혼자 연주하고. 내가 과장해서 연주해야 관객석 가장 뒤에 있는 사람에게도 내 음악적인 표현이 전해져. 연극배우가 연기하는 것처럼. 연극배우와 영화배우 연기가 다르잖아. 연극배우는 발음도 매우 정확하게, 감정도 영화배우보다 더 과장해서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지? 멀리서 연극을 보는 관객까지 대사와 감정이 전해져야 하니까. 연주가도 같아.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인 표현을 과장해서 연습하는 게 익숙해져서, 일상 대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동생: 그런가? 누나 말 듣고 보니 그렇네. 내가 아는 음대 친구도 무엇인가 표현할 때 과장된 느낌이야.

 

동생이 가식적이라고 말했던 게 무엇인지 이해했다. 나는 표정이 다양하다. 작은 것에도 깜짝 놀란다. 좋을 때는 활짝 웃는다. 수긍할 때는 크게 수긍한다. 웃을 때는 크게 웃는다. 나는 어릴 때부터 표정이 다양했다. 감정도 잘 표현했다. 악기를 하면서 더 잘 표현하게 됐다.

 

실용음악을 전공한 J를 알게 되었다. 아침 루틴 모임에서 J를 처음 만났을 때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J는 표정이 다양하고 표현이 풍부했다. 작은 것에도 까르르 웃는 모습이 나랑 닮아 보였다. 그때 알았다. 나도 저런 표정을 짓는구나!

 

나는 '표정이 다양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동생은 이 말을 다르게 표현했다. 가식적이라고... -_- 우리 집에 표정이 다양한 사람은 나 혼자다. 그래서 동생은 내가 가식적이라 생각했나 보다. 동생은 나랑 함께 산 기억이 없었으니까. 나를 잘 몰랐으니까. 

 

 

 

 

우리집 건물 옥상

 

어제 이웃 할아버지가 건물 옥상을 보여주셨다.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특별한 열쇠가 필요했다. 건물 지붕에서 보는 노을이 아름다웠다. 나는 감탄사를 마구 뱉었다. 정말로 감탄해서 그랬다.

 

원래 내가 그렇다. 이런 성격은 어린아이 같아 보일 수도 있다. 진중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이런 성격을 숨기기도 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는 진지한 사람처럼 보인다. 나에게 진지한 면도 있는데, 그것을 먼저 꺼내서 보여준다. 하지만 친해지면 내 본모습이 나온다. 

 

오늘도 나는 산책하며 백만 번 감탄했다. 오후 빛이 아름다워서. 단풍이 예뻐서. 나뭇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가 듣기 좋아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나는 이런 내 모습이 좋다. 동생에게 가식적으로 보여도 뭐 어떡하나? 이게 나인걸!

 

 

 


 

 

 

오늘 감탄 백만 번 하며 찍은 사진을 올린다. 감탄한 횟수만큼 사진도 많다. 더 많이 찍었지만 고르고 고른 사진 10장만 올린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