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나는 가족이 그리웠다

2022. 5. 6. 18:23일상 Alltag/가족 Familie

2022년 5월 6일 금요일 아침

 

 

 

 

 

그러니까 나는 가족이 그리웠다. 유년시절 나는 작은 공주이었다. 아빠는 언니를 큰 공주, 나를 작은 공주라 부르셨다. 내 어린 시절은 언니와 남동생이 있어 항상 북적북적했다. 나는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며 타지에 살게 되었다. 큰 도시 친구들은 악기도 공부도 잘했다. 나는 도태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했다. 매 학기 학생 음악회가 있었고, 학기 말에는 실기시험이 있었다.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대학에 가서도 열심히 내 길을 찾았다. 독일에 와서도.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독일에 와서 나는 가족 같은 사람들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고.

 

 

 

 

 

독일에서 만난 가족

 

독일 뒤셀도르프에 온 첫날 나는 어머니 아시는 분 댁에 머물렀다. 1960년대에 간호사로 오신 분이셨다. 그분과 그분의 남편은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독일에서 첫 기억이다. 어학원을 다니며 나는 그분들께 종종 연락을 드리며 안부를 물었다. 그분들도 나를 참 예뻐해 주셔서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때 초대해주셨다. 나는 그 인연을 계속 이어오고 있으며 이제 그분들을 고모와 고모부라 부른다. 

 

어학원에서 만난 스페인 친구 루시아와 알베르토와도 친하게 지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커플이었던 그들은 스페인에서 가져온 차가 있었다. 주말이면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 다녔다. 뒤셀도르프 근교에 있는 그들의 집에서 함께 요리도 했다. 이 친구들은 나의 사촌 언니, 오빠 같은 존재들이다.  

 

학부를 시작한 도시 괴팅엔에서는 독일 가족을 만났다. 대학의 국제교류처와 가톨릭 동아리에서 만든 프로그램으로 외국인 학생에게 독일 가족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독일 가족과 함께 살지는 않았지만 종종 만나 음악회를 가고 집밥도 먹었다. 봄에는 근교로 여행을 갔다. 지금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으며 이제 그분들은 나의 독일 아빠, 프랑스 엄마다. (프랑스 엄마는 프랑스에서 태어나서 결혼을 위해 독일로 오셨다.) 독일 가족에서 이란 언니도 만났다. 언니와 나는 지금도 종종 만나며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다. 

 

10대 후반부터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며 가족 같은 존재를 만들었다. 우리 가족 같은 따뜻한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 같다. 독일에서 만난 고모와 고모부, 스페인 사촌언니와 오빠, 독일 아빠와 프랑스 엄마, 이란 언니와 나의 삶을 공유했다. 독일어가 어려울 때는 고모와 고모부께 고충을 토로했다. 사촌 언니와 사촌 오빠는 나의 남자 친구들을 모두 만났다. 학교에서 조교로 일하며 교수님과 오해가 생겼을 때 독일 아빠와 프랑스 엄마께 조언을 구했다.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외로울 때 이란 언니가 내 옆에 있어주었다. 이밖에도 통계 수업에서 A를 받았을 때,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했을 때, 새로운 도시로 이사 와서 집 구하기 힘들 때, 베를린 대학의 석사 과정에 합격했을 때, 버스 사고로 몸이 아팠을 때 가장 가까이서 나를 위로해주고 응원해주었던 사람들은 독일에서 만난 가족이었다.

 

 

 

 

 

 

 

우리 가족

 

작년 6개월 동안 한국에서 지냈다. 고등학교 때 집을 떠나 생활한 이후 가장 긴 시간을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부모님과 나는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를 신나게 나누었다. 저녁을 먹고 아빠와 긴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는 아침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셔서 나는 엄마한테 조금 기다려달라고 부탁드릴 정도였다. 일요일 미사가 끝나고 부모님과 멋진 브런치 카페에서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하기도 했다. 부모님과 함께 텃밭을 기르고 방 구조를 바꾸는 사소한 일도 함께 했다. 나는 부모님께 그동안 내가 독일에 살며 경험한 좌절과 성취, 고단함과 행복, 외로움과 즐거움, 사랑과 건강, 앞으로 살고 싶은 삶을 말씀드렸다.  부모님도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60년 넘게 살며 경험한 좌절과 성취, 고단함과 행복, 외로움과 즐거움, 사랑과 건강,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한국에서 특별한 경험도 했다. 나는 한국에서 누군가를 만나 헤어지게 되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타지에 살았기 때문에 내가 연애할 때 부모님은 항상 멀리 계셨다. 이번에는 사랑의 시작부터 이별의 쓰라림까지 부모님이 함께 하셨다. 사랑을 시작하며 설레는 나를 보며 엄마와 아버지도 즐거워하셨다. 데이트 전날 밤에는 어떤 옷을 입을까 거실에서 패션쇼가 열렸다. 사랑이 끝나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기도를 시작했고 아빠는 묵묵히 내 옆을 지켜주셨다. 내가 독일에 살며 부모님과 함께 하고 경험하고 싶었던 일, 부모님과 대화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한국에 있던 6개월 동안 충분히 했다. 나와 부모님은 그 시간을 만끽했다. 

 

 

 

 

 

오늘 아침 독일어 기도문을 읽으며 문득 작년이 참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부모님과 공유할 이야기가 많다. 다시 독일로 돌아와 맞는 좌절과 성취, 고단함과 행복, 외로움과 즐거움을 부모님과 이야기할 수 있다. 다시 사랑을 시작하고 이별할 때 나의 감정을 부모님과 충분히 나눌 수 있다. 

 

독일에서 만난 가족, 한국 가족과 공유하고 대화할 거리가 많아서 좋다. 오늘 아침 기도를 마치고 든 생각이다. 

 

 

*글에는 나오지 않지만 한국에서 남동생, 언니네 부부와 조카들과도 시간을 많이 보냈다. 

 

 

 

한국집 뒷산 정상 - 내가 작년에 매일 오르던 산. 부모님은 지금도 매일 오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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