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7일 금요일 정오 A집 거실
나는 일찍 독립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타지에 살게 되었고 그 도시에서 대학을 다녔다. 졸업 후에는 독일에서 어학 공부를 했고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오랜 시간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
네 달 전 코로나 덕분에 한국에 왔다. 온라인 강의를 듣고 온라인 시험을 보았다. 지금은 소논문을 쓰고 있다. 한국에 와서 가장 좋은 점은 가족을 자주 볼 수 있다는 것. 특히 부모님과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서 좋다. 집을 떠났던 중 3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다르다. 부모님을 이해하는 마음이 깊어졌다.
나물 반찬을 즐겁게 하는 엄마, 등산 갔다가 죽순을 따오는 엄마, 집 앞 작은 텃밭을 열심히 돌보는 아빠, 손주들을 알뜰살뜰 챙기는 아빠, 이모인 나에게 모빌 선물을 주는 초등학교 1학년 조카, 이모가 안아보자고 하면 요리조리 피해 가는 초등학교 3학년 조카, 밤새 수다를 떨어도 할 말이 남아있는 동생,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많이 따뜻해진 것 같은 언니까지.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랫동안 내가 그리워했던 순간이다.
엄마의 연애 조언
엄마는 연애를 딱 한 번 해보고 아빠와 결혼했다. 아빠와 만나기 전까지 선은 몇 번 보았는데 연애는 아빠랑만 했다. 연애를 한 번 해 본 엄마는 나에게 해줄 말씀이 많다. 내가 연애는 엄마보다 더 했는데 말이다. 지난번에 엄마는 나에게 애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엄마와 한 대화를 아빠께 말씀드리니 아빠는 허허 웃으신다.
"아니, 애교가 전혀 없는 네 엄마가 너한테 애교가 중요하다고 했다고?"
우리 엄마에겐 애교가 없다. 6남 1녀 중 유일한 여자인 우리 엄마. 오빠 다섯과 남동생 한 명과 자란 엄마는 전혀 여성스러운 사람이 아니다.
아빠와 나란히 앉아 책 읽기
그저께 저녁 아빠와 거실에 앉아 책을 읽었다. 대각선 방향으로 거실 끝과 끝에 앉아서. 오늘 아침 아빠는 책을 한참 읽으시다가 나에게 이야기를 하신다. 고민이 있었는데 책을 보며 해결 방안이 떠올랐다고. 나는 아빠께 말씀드렸다.
"나도 아빠를 이해해. 아빠, 가장 중요한 건 아빠가 행복한 거야."
동생이랑 저녁 먹고 수다 떨기
지난주 오랜만에 동생을 만나 저녁을 먹으러 갔다. 평소 보다 조금 비싼 곳이었다.
"누나, 우리 이렇게 비싼 거 먹어도 돼?"
"괜찮아. 내가 너 격려하려고 왔잖아. 맛있는 거 많이 먹어."
맛있게 저녁을 먹고 동생 집으로 갔다. 동생 집에서 수다가 펼쳐졌다. 남녀평등, 정치, 선거, 세계 경제, 군대 이야기(육군사관학교, 3사관 학교, ROTC), 연애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가 이어졌다.
"누나, 내 생각에는 누나는 이런 남자를 만나야 해."
동생이 내가 만나면 좋을 남자의 성향을 알려준다. 참... 동생이 나한테 연애 조언도 해주고. 동생 진짜 다 컸네.
조카와 함께 하는 시간
그저께 언니네가 사는 A시에 왔다. 잠깐 언니 집에 들러 둘째 조카를 만났다. 둘째 조카는 내가 자신을 보러 온 줄 알고 기뻐했다.
"이모가 좋아하는 도미노 가져올게요!"
말하는 조카에게 나는
"미안해, 이모 지금 공부하러 가야 해."
라고 말했다. 나는 매일 할당된 공부(소논문)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조카가 실망한 눈빛을 내비쳤다. 나는 괜히 미안했다. 공부하러 가며 조카에게 말했다.
"이모가 오늘이랑 내일 공부 열심히 하고 금요일에 놀러 올게!"
오늘은 금요일. 오후 4시에 조카 보러 가기로 했다. 지금이 12시니까 3시간 열심히 공부하고 조카집에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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