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산책 - 새로운 하우스메이트

2021. 8. 23. 19:56일상 Alltag/함께 사는 즐거움 WG

2021년 8월 23일 저녁 7시 내방

 

 


한국에 새로운 하우스메이트가 생겼다. 3인이 함께 사는 셰어하우스(flat, WG)다. 어쩌다 들어오게 되었는데 좋은 하우스메이트를 만났다. 하우스메이트 아녜스와 안드레아를 소개해본다. 



하우스메이트 아녜스

 

하우스메이트 아녜스는 요리를 잘한다. 손이 커서 나와 안드레아에게 음식을 나누어준다. 아녜스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지나가는 나를 붙잡고 말한다. 나는 아녜스에게 말한다.

'미안해. 나 지금 공부해야하는데 이따가 이야기할까?'

아녜스와 대화할 때는 잘 끊어야한다. 아녜스 이야기가 지루해질 때면 나는 적절한 핑계를 대고 내 방으로 간다. 아녜스는 나에게 궁금한 것이 많다. 아녜스는 가끔 나의 매우 사적인 부분도 물어보는데 그럴 때 나는 잘 판단하여 대답한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것은 대답하고 싶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아녜스는 뒤끝이 없어서 내가 그렇게 대답해도 괜찮다는 눈치다. 아녜스와 대화하며 나는 거절하는 법을 배운다. (아녜스와 유익한 대화를 할 때도 많다.)

 

아녜스는 아침형 인간이다. 아니, 새벽형 인간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난다. 나는 여러 셰어하우스에서 살아보았는데 나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아녜스가 처음이다. 나는 새벽 5-6시 사이에 눈이 떠진다. 그 시각 아녜스는 항상 화장실에 있다. 가끔 나는 아녜스가 화장실 가는 소리에 깬다.

아녜스는 사진을 즐겨 찍는다. 새벽 산책을 나가 사진을 찍어온다. 인스타에 올리는 사진을 보면 꽤나 진지하게 사진에 임한다. 집에서는 빈틈이 많아 보이는데 인스타에 올리는 사진을 보면 다른 사람 같다.

 

 

 

하우스메이트 안드레아

 

안드레아는 사려 깊다. 함께 사는 나를 배려하는 게 느껴진다. 안드레아는 상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준다.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주로 안드레아와 대화한다. 안드레아는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안드레아는 나의 생각에 공감해준다.

안드레아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밖에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지만 친한 친구와는 대화를 즐겨한다. 안드레아는 나와 아녜스와 대화를 많이 한다. 안드레아는 고맙다는 표현을 잘한다.

안드레아는 책을 즐겨 읽는다.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다고 했다. 안드레아 방에 가면 책이 정말 많다. 나는 안드레아에게 책을 빌리곤 한다. 안드레아의 요리 솜씨는 별로 좋지 않지만 정리를 무척 잘한다. 우리가 함께 쓰는 냉장고 정리도 안드레아 담당이다. 안드레아는 셰어하우스 청소 담당이 아닌 구역도 청소한다. 나는 청소하는 안드레아를 볼 때마다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안드레아는 매일 근력운동을 한다. 아령을 들고 팔을 들어올린다. 벽에 몸을 기대고 팔굽혀펴기도 한다. 아침이나 저녁에는 꼭 산책을 나간다. 안드레아의 방은 깨끗하다. 안드레아는 미니멀리스트다. 필요한 옷만 가지고 있다. 책 외에는 물건이 별로 없다.




 

저녁 산책, 나로 돌아오다

 

오늘 저녁 산책을 나갔다. 베를린에서 산책 나갔던 시간이었다. 베를린에서는 하루를 마치고 저녁에 동네를 걸었다. 한국 동네도 걸어보니 구석구석 새로운 곳이 많더라. 베를린에서 코로나 시기를 보내며 동네 도보여행을 했던 기억이 났다. 베를린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산책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한국에 한 달 반을 더 있게 되었다. 8월 말에 독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지만 한국에서 백신을 맞고 가기로 했다. 한국 생활을 8월 말까지로 계획해두었는데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더라. 코로나로 신나게 여행도 못하고.

 

생각해보니 베를린 생활과 다를 게 없었다. 베를린에서도 내 삶은 단순했으니까. 아침에 일어나 아침 루틴을 하고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저녁에는 산책을 나갔다. 하우스메이트들과 함께 요리하며 대화하는 소소한 행복도 있었다. 주말에는 친구를 만나거나 베를린 여행을 했다. 한국에서의 삶도 비슷하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소논문을 쓰며 일주일에 한 번 면담을 한다. 저녁에는 산책을 나간다. 한국에서 지내는 방은 베를린 방과 비슷한 크기다. 내가 지내는 방에는 꼭 필요한 가구만 있다.

 

산책하며 한국에서의 삶이 베를린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 함께 사는 하우스메이트 아녜스와 안드레아를 떠올리니 웃음이 났다. 베를린 하우스메이트들과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함께 사는 하우스메이트 아녜스는 우리 엄마다. 딸에게 관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하우스메이트다. 엄마는 쿨해서 뒤끝이 없다. 나는 엄마에게 거절하는 법을 배운다. 하우스메이트 안드레아는 우리 아빠다. 사려 깊은 아빠는 함께 사는 나를 배려해준다. 비가 많이 오자 저녁 산책을 나간 나에게 우산을 가지고 나갔는지 전화를 거는 자상한 아빠다. 아녜스와 안드레아는 엄마 아빠의 세례명이다.

 

엄마와 아빠는 나의 베를린 하우스메이트들과 비슷한 점이 많다. 함께 사는 것은 결국 비슷하기 때문이다. 나는 독일에서 여러 셰어하우스에 살았다. 어학원, 학부, 석사 모두 셰어하우스에 살았다. 혼자 사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이 더 잘 맞았기 때문이다. 가끔 불편하기도 했지만 함께 살아서 느끼는 즐거움이 더 컸다. 엄마 잔소리의 불편함보다 엄마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쁨이 더 크다.

 

부모님을 하우스메이트로 여기며 한국에서 남은 시간을 즐겁게 지내볼 계획이다. 성인이 되어 부모님과 함께 사는 일이 어디 쉬울까. 다행히 부모님은 성인인 딸을 많이 배려해주신다. 8월 말로 계획했던 한국에서의 생활이 길어졌다. 한국에서의 삶에 활력을 줄 무언가를 찾아야 보아야지.




우리 동네에 이런 길이 있었다니! 

 

 

동네 두꺼비

 

 

 

 

 

 

 

 

2021년 8월 23일 월요일 저녁 산책

 

 

 

 

 


 

 

 

 

이어지는 글 - 베를린 하우스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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