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17일 우리집 내 방
텅 빈 충만
Keywords: 나의 시간, 요가, 낮잠, 엄마와 대화, 아빠와 통화, 주말 계획, 사과와 오이, 시험 공부, 거실 서재, 단호하고 상냥한 거리두기, 친구들
참고 문헌처럼 키워드를 정리하고 글을 써보겠다. 이렇게 키워드를 먼저 쓰면 오늘 기억에 남는 일을 빼먹지 않고 쓸 수 있을테니까.
오늘은 텅 빈 충만을 느낀 날이었다. 텅 빈 충만은 법정 스님 책 <스스로 행복하라>에서 가져온 단어다. 잠들기 전 친구와 통화를 하기로 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거실 책상을 정리하고 방으로 왔다.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몇 장 읽고 블로그를 열었다. 오늘을 기록하기 위해. 친구와 약속 시간이 되어버려서 일기는 못 쓰나 했다.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잠시 다른 곳에 전화를 해야한다고. 나는 오히려 고마웠다. 잠들기 전 여유롭게 일기 쓸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피에르 쌍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느린 삶을 받아들이는 몇 가지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가로이 거닐기
듣기
권태
꿈꾸기
기다리기
마음의 고형
글쓰기
포도주
모데라토 칸타빌레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2001: 동문선 출판사 p.12-13)
미소가 나왔다. 한가로이 거닐기는 베를린에서부터 가져온 습관이다. 요즘 나는 누군가의 말을 즐겨 듣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쌍소가 소개한 태도 대부분은 이미 나의 습관이거나 요즘 시도해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 중 하나가 '글쓰기'다. 나의 큰 즐거움이다. 아마도 가장 오래된 습관이 아닌가 싶다.
글쓰기: 우리 안에서 조금씩 진실이 자라날 수 있도록 마음의 소리를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2001: 동문선 출판사 p.12)
잠들기 전 아늑한 분위기에서 책 읽는 걸 좋아하지만 일기 쓰기에 비교할 수는 없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쓰는 편지다. 나의 글은 내가 가장 많이 읽으므로 모든 글은 나에게 보내는 편지라 할 수 있겠다.
어제 잠들기 전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전화 통화를 하기로 한 친구가 조금 늦게 연락을 했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연락이 없는 걸 보고 나는 핸드폰을 침대 아래에 두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를 모두 쓰고 핸드폰을 열어보니 친구에게 문자가 와 있더라. 친구와 좋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어떤 날보다 더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내 마음이 여유로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약속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편이다. 몇 시에 만나자고 약속하면 아침부터 하루 일정에 약속을 넣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약속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아니다(물론 나도 늦을 때도 있고 약속 자체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어제 나는 친구에게 '약속 시간은 잘 지켜주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친구 덕분에 여유로운 30분의 시간을 가지며 하루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나에게 좋은 시간이었다. 의도하지 않게 시간이 생겼을 때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 좋더라.
오전에는 엄마가 다니는 피부관리샵에 다녀왔다. 어깨와 등, 팔 마시지와 피부 관리를 받는 곳이다. 한국에 오니 이런 호사도 누려본다. 독일에서 태국마시지샵에 딱 한 번 가보았다. 가격이 비싸서 다시 갈 엄두를 못 냈다. 빠뜻한 대학생 생활비로는 비싼 가격이었다.
엄마와 함께 마시지를 받고 집에 돌아오니 몸이 노곤하더라. 방에서 낮잠을 잤다. 어제 새벽 1시까지 수업을 들었고 오늘 새벽 6시에 일어나 온라인 모임에서 근력운동을 했다. 잠이 부족했다. 푹 자고 일어나 아침에 못한 요가와 명상을 이어했다. 아침 루틴인 독일어 기도문과 일기일회를 읽었다.
친구 전화가 왔다. 오늘 글은 여기서 마친다. 역시나 쓰고 싶은 내용을 다 못 썼다. 괜찮다. 일기 아닌가! 글 앞에 키워드를 써 놓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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