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산책 - 궤도에서 벗어난 답, 작은 정원, 봄밤, 위로

2021. 4. 20. 04:22일상 Alltag/하루하루가 모여 heute

2021년 4월 19일 월요일 저녁 6:45-08:50 (산책 시간)

 

 

 

긴 산책을 다녀왔다. 길게 가려던 것은 아니고 걷다 보니 긴 여정이 되었다. 

 

오늘은 월요병이 조금 있는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명상과 요가를 하고 다시 잠들었다. 평소에는 잠깐 자면 상쾌하게 일어나는데 오늘은 피곤하더라. 생각해보니 지난 학기 둘째 주에도 그랬다. 왜 그랬을까?

 

1. 학기 첫 주 새로 배운 내용이 많아서 피곤했다.

2. 텍스트를 수업에 읽어가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두 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수업에 빠지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런 마음이 들 때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었다. (공부하기 싫을 때도 친구들이랑 만나 공부하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어려운 과제가 있을 때도.) 첫 번째 수업 10분 전, 두 번째 수업 40분 전에 친구들과 대화하고 음악을 듣다 보니 수업 가기 싫은 마음이 누그러들었다.

 

두 수업 모두 흥미로웠다. 특히 오후 수업(Globalization and Social Inequality)은 정말 듣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교수님이 수업을 이끌어가는 방식이 매우 흥미로웠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우리의 답으로 수업을 진행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꼭 맞는 답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틀린 답을 해도 되는 분위기라서 나도 생각나는 걸 많이 말했다. 내가 말한 답 중에는 교수님이 원하는 답도 있었고, 궤도에서 조금 벗어난 답도 있었다. 나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수업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수업 끝나고 오늘 배운 내용을 책에서 읽으며 정리해보기로 했다. Karl Marx, Max Weber (Social Class), Eliten von Hartmann. 

 

 

 

 

 

 

 

 

 

 

 

 

왼쪽: 구름이 예쁘다. 중앙: 횡단보도에서 신호등 기다리며 본 노을. 오른쪽: 와! 정말 말도 안 되게 아름답다! 감탄을 하게 만든 산책로
작은 정원. 나도 도시에 살며 작은 정원을 가꾸고 싶었는데 우연히 집 근처에서 발견했다. 학생을 위한 작은 정원도 있는지 찾아보아야지!

 

 

 

수업 끝나고 오늘 배운 내용을 정리한 후 산책을 나갔다. 등산 잠바를 목까지 올리며 하늘을 보게 되었다. 구름이 정말 예쁘더라. 사진을 찍어 친구들 채팅방에 공유했다. 오늘은 동네 '작은 정원'에 다녀왔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땅을 몇 평씩 분양해 정원을 가꿀 수 있게 해둔 곳이다. 사람들은 작은 집을 지어놓고 텃밭과 꽃을 가꾼다. 

 

'작은 정원처럼 나의 글도 누군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작은 정원을 만나듯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난다. 요즘 나는 종종 인연에 대해 생각한다. 내 곁에 있는 친구들을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생각하며 길을 걸었다. 

 

저녁 7시 15분: 작은 정원을 걸으며 들은 음악

Berge - Für die Liebe (Unplugged)

Edward MacDowell - To a Wild Rose

 

 

 

 

 

 

 

 

 

 

 

 

 

오늘 수업에서 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가 말하는 Class와 Status에 대해 배웠다. 동독과 서독으로 나누어져 있던 시절 동독에서는 칼 마르크스만 읽을 수 있었고 베버는 읽지 못했단다. 내가 오늘 걷는 길에서 살던 사람들은 몇 십년 전까지 어느 한 사회학자를 읽지 못했고, 내가 며칠 전 걷던 길에 살던 사람은 다른 사회학자의 글을 읽지 못했다니 새삼 신기했다. 이제는 베를린 어디에서나 두 사회학자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내가 사회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꽤나 심각하게 생각한다. 사회학은 한국 사람들에게 진지한 학문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사회학을 시작했다. 그저 사회학 세부 분야가 재미있어 보여 시작했다. 사회학을 시작하던 나는 하얀 도화지 같았다. 철학도 역사도 잘 몰랐고 비판적인 사고도 없었다. 새하얀 도화지라서 남들 다 아는 거 모르고 시작했지만 나만의 장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쪽 입장에 있지 않았다. 선입견 없이 사회학을 공부했다. 사회학을 '애정을 가지고 사회 곳곳을 관찰하며 살펴보는 학문'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시작한 사회학에서 통계도 배우고 음악교육과 사회학을 접목시켜보기도 했다. 오늘 수업을 들으며 칼 마르크스의 Class와 막스 베버의 Class를 구별할 줄 나를 발견했다. 많이 발전했구나.

 

 

 

 

 

 

 

 

 

 

 

 

 

노을이 아름다웠다. 걷다 말고 하늘을 바라 보았다. 초록색 담장(오른쪽 사진)에 등을 기대어 맞은편 하늘(왼쪽)을 바라보았다. 사진 찍는 대신 하늘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렇게 몇 분 서있다가 누군가와 아름다운 노을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을 찍고 메모를 남겼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봄밤이었다. 

 

저녁 7시 45분: 노을 보며 들은 음악 

가을 방학 - 이름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이해인 수녀님이 낭독하시는 <낡은 구두>를 들으며 걷다 오른쪽 하늘을 보았다. 노을이 정말 아름다웠다. 

 

낡은 구두 - 이해인

 

내가 걸어 다닌 수많은 장소를

그는 알고 있겠지

내가 만나 본 수많은 이들의 모습도

아마 기억하고 있겠지

 

나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던 그는

내가 쓴 시간의 증인

비스듬히 닳아 버린 뒤축처럼

고르지 못해 부끄럽던 나의 날들도

그는 알고 있겠지

 

언제나 편안하고 참을성 많던

한 켤레 낡은 구두

이제는 더 신을 수 없게 되었어도

선뜻 내다 버릴 수가 없다

 

몇 년 동안 나와 함께 다니며 

슬픔에도 기쁨에도 정들었던 친구

묵묵히 나의 삶을 받쳐 준 

고마운 그를

 

 

 

시 <낡은 구두>를 이해하는 건 내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의미겠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시간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의 글도 이해인 수녀님 시처럼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2021년 4월 19일 산책길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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