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 베드버그였을까? 처음은 언제나 어렵다

2016. 3. 11. 15:48어느 날/과테말라 음악교육 인턴 Guatemala


과테말라에 온 지 이틀 째 되던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손에 모기 자국이 있다.

그 날 저녁 침대에 누웠는데 등이 가렵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배에 모기 자국이 있다.

그리고 방에 날아다니는 모기를 잡았는데 핏자국이 없다.


과테말라에 온 지 6일 째.

새벽에 팔이 너무 가려워 눈이 떠졌다.

내가 자면서 오른팔 팔을 긁고 있더라.

만져보니까 오돌토톨한 게 많이 있었다.

다시 잠이 들었고 아침에 팔을 보니...

이건 분명 모기가 아니다.

팔에 빨간 자국이 너무 많다. 옷도 두 겹을 입고 잤는데 모기가 그걸 뚫고 물었을 리 없다.

그리고 보니 오른팔 말고도 왼팔에도 빨간 자국이 대여섯 개 있고

배에도 빨간 자국이 있고

목과 어깨 사이에도 빨간 자국이 10개는 넘게 있다. 꼭 모기 물린 자국처럼.









이게 베드버그인가?

처음에는 하나 둘 보이다가 어느날 갑자기 확 늘어난다는 베드버그인가?


사실 내가 있는 과테말라 Comapala  홈스테이 집은 한국과 비교했을 때 그렇게 깨끗한 편은 아니다. 

벌써 내 방에서 벌레 몇 마리를 발견했고

화장실도 청소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










여기까지가 2월 28일 일요일에 적은 일기이다.

오늘은 3월 10일.

일주일 반이 지났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분명히 베드버그인데

홈스테이 할머니는 내가 베드버그 같다고 하자 속이 많이 상하신 눈치였다.

내가 오기 전 방 청소도 하시고 이불도 새 것으로 바꾸어 두셨다고.


내가 보기에는 방이 그렇게 청결하지 않은데 

화장실도 처음부터 많이 지저분했는데...


과테말라에 도착 이틀 째부터 하나 둘 생기는 빨간자국을 보다

6일 째 되던 날 저렇게 되고나니 

약을 먹고 이불을 바꿔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홈스테이집을 바꿀수도 없으니 말이다.

내가 있는 San Juan Comalapa는 작은 도시라서 홈스테이를 할 수 있는 집이 많지 않다. 거의 없다.


이불을 바꿔주실 때 홈스테이 할머니의 실망 + 서운 + 조금 화가나신 듯한 표정을 보면서 

이 집에서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앞으로 4주나 남아있는데..


3월 1일 화요일에는 병원에 갔다.

(10만원이 넘는 보험이 적용 안되는 진료비와 약값에 마음 좀 쓰렸다. )

의사선생님도 벌레에 물린 거라고 하셨다.



사실 벌레 물린 것이야 별것 아니다.

베드버그도 약을 잘 먹으면 일주일이면 좋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벌레를 물리고 나서 벌어지는 상황,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려웠다.

홈스테이가 아니라 여행 숙소였다면 더이상 가지 않으면 그만.

여기서는 그럴수도 없다.


"베드버그 같아요, 이불을 바꿔주세요" 내 말에 홈스테이 할머니는 마음이 상했고

나와 홈스테이 할머니 사이에서 통역을 해주던 독일 여자아이 Mareike는 진이 빠졌다.

Mareike는 내가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때부터 많이 도와주었던 아이이다.


나는 나대로 할머니 기분 신경쓰느라 걱정이 되었다.

또 시차적응과 과테말라에 도착 후 계속되는 치질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고산지대라 날씨가 아침 저녁으로는 굉장히 추웠다.

게다가 이 곳에는 영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난 스페인어를 전혀 못했기 때문에

답답하기도 하고 외로웠다.



당시에는 외롭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날 친구랑 스카이프를 하면서 울컥하더라.

"나 외로워" 하고 울었다..












이 곳 Comalapa는 과테말라 시티처럼 큰 도시가 아니라 고산지대에 있는 마을이다.

마야어와 스페이인어를 쓰는 곳이다.

세 끼 홈스테이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는 음식을 먹는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먹는 맛이다.

자꾸 방과 화장실에서 벌레가 보인다.



이주일 반이 지난 지금

참 힘들었겠구나 생각이 든다.







여전히 팔에 빨간자국이 남아있고

여기저기가 가렵지만

이제 여기에 조금 아주 조금 익숙해졌다.

저녁에 잘 자고 종종 늦잠도 잔다.


홈스테이 할머니와 눈을 마주치면 빙그레 웃는다.

아는 사람들도 생겼다.


조금 익숙해졌다.











+



이 글(3.10)을 쓰고 나서도 3월 말까지 계속해서 베드버그에 물렸다 ㅠ_ㅠ

그 사이 병원도 두 번이나 갔다.







과테말라 친구들이

베드버그가 선물해준 목걸이라고 했다 -_-










사진에 보이는 것은 일부분이고 더 많이 물렸다.

손에도 팔에도 목에도 귀에도..



이불도 바꿨고 

침대에 살충제도 뿌렸지만

여전히 계속 물렸다.


침대 자체를 바꾸거나 방을 바꿔야 했지만

내가 살던 홈스테이를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다른 방에도 갈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 곳에 있었다.


사실 그 곳에 베드버그가 있는 건 

홈스테이 할머니 잘못도 아니었으니

(전에 그 방을 쓰던 학생은 물린적이 없다고 하더라)

할머니를 탓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할머니는 나와 마라이케 (같이 살던 첼로 하는 친구)에게 정말 잘해주셨다.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셨고

모르는 게 있으면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어차피 이 환경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할머니 마음 상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아서 

매일 새로 생겨나는 베드버그 자국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또 베드버그 외에는 정말 즐거운 나날을 그곳에서 보냈기 때문에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베드버그가 죽을 병은 아니니 말이다.


난 여기에서 좋은 친구, 좋은 홈스테이 가족, 좋은 학생들, 좋은 사람을 만났고

여기서 하는 일도 보람되고 재미있으니까.












+




독일로 돌아온 후:



독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대학병원으로 갔다.

처음에는 진료를 당장 해줄 수 없다고 했다.

예약이 모두 끝난 일요일 오후에 도착했기 때문에.


그래도 "과테말라에서 도착하자마자 바로 이 곳으로 왔어요."

베드버그 자국을 보여주며 급박함을 표력(?)하니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피부과 진료실에 들어가 언제 어디에서 베드버그가 생겼는지, 

그리고 수많은 자국을 보여주자

의사는 확실히 베드버그라고 한다.


자신도 대학 시절 파나마에서 인턴을 했을 때 베드버드에 물린 적이 있다고.

과테말라에서 가져온 모든 옷을 60도에서 빨고 

빨지 못하는 것은 냉동보관을 하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여행가방은 되도록이면 침대에서 떨어진 곳에 두라고.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입고 있던 옷을 빨았다.









과테말라에서 짐을 싸올 때 이렇게 비닐봉지에 넣어 가져왔다. 

옷에 남아있을 수도 있는 베드버그가 책이나 가방으로 가지 않도록.


지퍼백에 넣어오려 했지만

Comalapa에는 지퍼백을 파근 곳이 없어

쓰레기봉투용 검은 비닐에 담아왔다 :D


옷을 담은 다음 바람을 빼주고 최대한 꽉 묶었다.
























세탁기 돌리고 건조기 돌리고 ...







그리고 그 이후로 더 이상 새로운 배드버그 자국은 없었다.




과테말라에서 돌아와 만난 독일 친구 둘이

나랑 만나고 와서 몸에 빨간 자국이 생겼다며 겁을 먹었던 일이 있었다.

다행히 그 빨간 자국은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모기였던 걸로 판명!


Georg는 내게 베드버그 인터넷 신문 기사(베드버그 사진이 엄청 크게 나온)를 보내주기도 했고

Patrick은 만날 때마다 새로운 베드버그 자국이 생기지 않았는지 장난스럽게 묻곤 했다.








5개월에 지난 지금

나는 잘 지내고 있다.

더 이상의 베드버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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