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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Alltag/가족 Familie

동생 이야기 (René: 인생의 친구)

by 통로- 2017. 12. 3.




어제 독일 가족 모임이 있었다.

12월 첫주 토요일에는 거위고기를 먹으러 가는 것이 독일 가족의 전통!

20년째 같은 시기, 같은 레스토랑, 같은 메뉴를 먹고 있다고 한다 ;-)


독일 가족은 독일인 아빠, 프랑스인 엄마 (결혼 후 독일에 살고 계신다), 나, 시리아 여동생 2명 이다.

대학에서 제공하는 독일 가족과 외국인 학생들을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으로 만났다.

처음 괴팅엔 Göttingen에 왔을 때는 이란 언니와 중국인 남동생이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큰 언니가 되었다 :-)


독일 가족과 함께 살지는 않고 (난 기숙사에서 살고 있다.) 

함께 음악회에 가고 저녁을 먹으며 만난다.


독일 아빠와 프랑스 엄마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다.

지금은 다른 도시에서 각자의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이 모든 가족이 모이는 것이 12월 첫째주 토요일! 

대림시기가 시작되기 하루 전이다.


아무튼 어제 맛있게 거위고기를 먹고 다시 독일가족 집으로 돌아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동생 이야기가 나왔다.


1년 전에 만났던 말렌(독일 부모님 아들의 부인, 그러니까 독일 부모님의 며느리)이 

"가족과는 자주 만나니?"

물어보길래, 동생이 독일에 왔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동생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동생과 나는 6년 터울로 나이차가 꽤 난다. 언니도 있다, 3살 많은.

남동생-6년-나-3년-언니


동생이 유치원 졸업 때,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언니는 중학교를 졸업했다.

동생 유치원 졸업식과 내 초등학교 졸업식이 같은 날이어서

부모님은 동생 유치원 졸업식 꽃다발을 내 졸업식에 재사용 하셨다... ㅎㅎ


그리고 우리는 같은 캠퍼스(같이 붙어있는)의 초, 중, 고등학교를 다녔다. 같은 해 입학했다. 

고등학생인 언니가 가장 먼저 등교하고 그 다음은 나, 그리고 동생이 학교로 갔다. (동생은 언니가 아침을 먹을 때 눈 비비고 일어났다.)

그래서 나와 동생은 종종 언니가 깜박하고 집에 두고 간 준비물을 챙겨주러 고등학교로 갔다.

(난 무려 초등학교 때도 언니 준비물 심부름을 했다. 우리 둘은 같은 시기에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다.)


언니 반 친구들이 "어머 너 **이랑 똑같이 생겼다!"고 신기해했고

동생(초1)이 고등학교에 찾아가는 날이면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ㅋㅋㅋㅋㅋ


언니랑 싸운다고 (대든다고)

6살이나 어린 동생이랑 싸운다고 (수준이 맞냐고)

엄마한테 혼나서 억울했던 기억도 많다.


콩알 같은 동생의 머리를 살짝 건드리는 (한 대 치는) 게 참 재밌었다... 동생아 미안...

(동생 머리는 항상 내 허리만큼 와서 한 대 치기 좋은 위치였다)

라면 버섯 건더기를 오징어라고 하며 먹이기도 하고. (이건 언니랑 나랑 함께 동생 속였다 ㅋㅋㅋ)


그래도 밖에 나가서는 동생 챙기기에 바빴다.

누가 내 동생 건드리면 못 참는 작은 누나였다고 할까 ㅋㅋㅋ

뭔가 책임감,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렇게 우리 셋은 3년 동안 같은 캠퍼스에서 학교를 다니다

서울로 고등학교(나), 대학(언니)을 가면서 나와 언니는 서울로 왔다.

동생은 계속 집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엄마는 일주일의 반은 서울집에, 일주일의 반은 집(진짜집? 본가라고 해야하나?)에 계셨다.

초등학생 동생도 돌봐야하고 고등학생 나도 챙겨주셔야 했으니까.

엄마가 서울에 계실 땐 아빠가 동생을 전담하셨다.

소풍이 있으면 김밥도 싸고, 학부모 회의에도 나가시고 ;-)


아빠 김밥은 햄이랑 치즈만 들어가서 엄청 맛있었다고 ㅋㅋㅋㅋㅋ



아무튼 나는 그 이후로 동생이랑 함께 살 기회가 없었다.

동생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 난 고등학교 이후로.


대학에 간 언니는 종종 동생과 여행도 가면서 시간을 함께 보낼 기회가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악기 연습과 공부로 바쁘게 지냈기 때문에 그럴 기회가 없었다.

아무래도 악기와 공부 두 가지를 병행했기 때문에 가족 중에서 가장 바빴고 특히나 동생과 함께 할 시간은 거의 없었다.

언니랑은 함께 살았고, 엄마는 일주일에 반은 서울에 계셨고, 종종 아빠가 서울에 오셨지만 (엄마가 친구들과 여행을 가셨을 때)

동생은 학교를 다녀야 했으니 항상 본가에 있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가족여행은 거의 못 갔다. 추석, 설날에도 레슨을 갔고 연습을 했고 공부까지 해야했으니.


어느날은 서울집에 검은 물체가 돌아다녀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몇 개월 만에 만난 키가 엄청나게 커버린 동생 (초5, 6 학년. 얼굴은 또 까맣게 탔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을 가고 동생은 부모님이 사시는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가면서 또 가끔 보는 사이가 되었다.

종종 부모님께 동생 소식을 듣는 정도?












그렇게 나는 독일로 왔고 동생은 한국에서 대학에 갔다.

내가 독일에 온 지 2년이 되었을 때 동생이 독일로 놀러 왔다.

함께 유럽여행을 하기 위해서.


독일과 주변 5개국을 3주 동안 여행하면서, 동생에 대해 많이 알았다.

동생 초등학교 때 이야기, 중학교 때 이야기, 고등학교 때 이야기, 재수 이야기, 친구 이야기, 패션 이야기, 힘들었을 때 이야기 등

내가 그동안 몰랐던 이야기를 들었다.


오래 전 독립한 나와 (고등학교를 가면서 반은 독립을 했으니까. 빨래도 요리도 직접하고, 타지에서 사는 서글픔도 느껴보았으니 말이다.) 

외동처럼 살았던 동생은 부딪치기도 했다. 막판에는 싸웠다... -_-

서로의 성격, 생활습관 하나도 몰랐다.

아마 부모님은, 우리가 이런 점을 배울 수 있도록 동생 유럽 여행을 지원해주셨을 거다.









그리고 동생이 2017년 4월 독일에 왔다.

어학을 배우고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기 위해서. 

유럽여행 이후로 조금은 어색한 우리...


이번에는 좋은 누나, 좋은 친구가 되주려 노력중이다.


동생의 어학원 신청이나 대학 지원 등 내가 도와줄 일이 많아서 바빠졌지만 (내 공부 할 시간이 부족하지만)

동생이 같은 독일 하늘에 있어서 참 든든하다.


성격도 성향도 완전 다른 우리는 (언니, 나, 동생은 진짜 완전 다르다.)

서로에게 맞춰가며 살아보려 노력중이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말이다.

유럽여행 이후 보다 확실히 사이가 좋아졌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기를...)


잘은 모르지만 동생도 나랑 맞춰 사느라 고단할거다 ㅋㅋㅋㅋㅋ

같은 도시에 살지 않아 서로의 사생활이 보장되고 자유가 있어 다행 ㅎㅎㅎㅎ











며칠 전 기숙사에 함께 살고 있는 룸메(플렛메이트)랑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어렸을 때 언니, 동생이랑 항상 나눠야 해서 (먹을 거, 옷, 책, 악세사리 등 모든 것) 

외동딸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자 룸메 (외동)가 하는 말이

"Du hast aber jetzt Freunde des Lebens." 

"그래도 지금 너는 인생의 친구가 있잖아."


뒷통수를 딱 맞은 느낌.


맞다. 

나는 인생을 함께 할 친구가 있다.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내 입장에서는) 나만 엄마한테 혼나 억울한 적도 있지만

내게는 인생의 친구가 둘이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