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해제 하루 전 - 가족, 친구, 한국, 나

2021. 5. 21. 20:57일상 Alltag/하루하루가 모여 heute

한국에 온 지 14일이 되었다. 오늘은 자가격리 마지막 밤이다. 오늘 아침에 받았던 코로나 테스트에서 음성이 나오면 내일 낮 12시부터 나는 자유다.

14일 자가격리를 하며 느낀 점을 적어보겠다. 자가격리를 시작할 때에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작년에 독일에서 한국으로 입국한 동생이 자가격리를 했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렇게 힘들게 들리지 않았다. 몇 달 전 자가격리를 했던 친구 이야기도 괜찮게 느껴졌다. 나의 자가격리도 힘들지는 않았다. 나를 돌아보고 가족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 시간이었다. 그동안의 내 삶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아픈 곳 없이 14일을 보낸 것은 참 기쁜 일이었다.

14일 동안 나에게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 지난 몇 년 동안 바쁘게 지내느라 살피지 못했던 내 마음을 발견했다. 아버지의 독서노트를 읽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 감정을 손편지로 적어 친구에게 보내기도 했다. 친구의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밤 11시 15분에 시작하는 학교 수업을 들었다. 쏟아지는 잠을 참았다. 눈만 뜨고 있지 머리에 들어오는 것은 하나도 없었던 순간이었다.

친구와 밤새도록 통화하기도 했다. 늦은 밤에 시작해 이른 새벽까지 대화했다. 어떤 날은 이른 새벽에서 아침까지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모든 게 내가 자가 격리한 덕분에 시간이 많아 가능한 일이었다.





작년 코로나 이후 나는 여러 모임에 등록해두었다. 독서모임, 원서 낭독 모임, (요즘 읽는 책을 소개하는) 독서 수다 모임, 온라인 운동 모임, 스터디 모임, 아침 루틴 모임 등. 덕분에 자가 격리하며 매일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었다. 공부하고, 책을 주제로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상대의 이야기도 듣고, 매일 플랭크와 복근 운동을 하며 건강도 챙겼다. 과거의 나에게 고마웠다.





3년 만에 한국에 왔다. 아직 자가격리가 끝나지 않아서 한국을 제대로 경험해보지는 못했다. 오늘 보건소에 가는 길 본 한국의 풍경이 낯설었다. 한 번도 살지 않아 본 도시에서 자가격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낯설게 보였다. 내일 자가격리가 해제되면 나는 아버지 차를 타고 내가 나고 자란 도시로 간다. 두 시간 반 동안 아버지와 차에서 할 대화가 기대된다.







자가격리 마지막 인스타에 쓴 글:

D+14 자가격리 마지막날!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왔다.

내가 2주 동안 있을 공간을 마련해주신 부모님과 언니, 내가 한국에 오는 동안 살뜰하게 챙겨준 동생, 이모랑 전화 통화해준 귀요미 조카들, 베를린에서부터 한국 자가격리까지 2주 동안 나랑 수다 떨고 나를 챙겨주고 내게 교촌치킨 쿠폰을 선물한 친구, 매일 따뜻한 전화를 해주신 공무원, 매일 저녁 8시에 온라인에서 만나 함께 운동했던 친구들, 아침에 일어나 무엇인가 하도록 동기부여를 해준 아침루틴모임 사람들, 오후 3시 함께 공부했던 베를린 글쓰기 그룹 친구들, 독서모임 사람들, 독서수다 친구들, 원서 낭독회 사람들, 내가 미처 떠올리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오늘 코로나 검사 결과가 음성이면 나는 내일부터 자유다!

참외가 참 달다.



자가격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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