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에서 피해야 하는 것
1. 새 등산화
2. 많은 짐
스페인 산티아고 데 꼼뽀스텔라 순례자길 안내책자에는
순례길 시작 전, 평소에 등산화를 신고 걷는 것을 추천한다.
그래야 매일 20-30km 걸어야 하는 순례자길에서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독일에 사는 나는 등산화가 따로 없었다.
지난 여름 한국에 갔을 때 신던 언니 등산화가 있었는데
그것을 부모님이 가지고 오시기로 하셨다.
마드리드에서 부모님을 만나 신발을 받아보니 처음보는 등산화이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등산화가 좋을 것 같아 엄마가 신던 등산화를 가져오셨단다.
언니 등산화는 발목까지 올라오지 않는 거라 오래걸었을 때 발에 무리가 갈 수도 있다고.
새 등산화는 아니었지만 내게는 처음 신는 등산화였다.
처음 신는 신발을 신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서 하루 20-30 km 걸으니 발이 아프다고 난리다.
중간중간 쉬면서 등산화 벗고 양말 벗고 발 스트레칭을 했다.
등산화 끈을 사진처럼 최대한 느슨하게 하고 걸었다.
어떤 날은 발가락 물집 때문에 아빠 샌달을 신고 걸었다.
발이 아파 절뚝절뚝 걷고 있는데 뒤에서 오는 여자가 인사를 한다.
베를린에서 헤어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단다. 우크라이나에서 독일로 온 지 10년이 넘었다고.
발이 아프냐고 물어보면서
발이 아플 때는 그 아픈 것에 집중을 해보란다. 그럼 덜 아프다고.
"아프다 아프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아픈 것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라고.
발바닥, 발가락의 통증에 집중해본다.
아, 내가 걸을 때 이 부분이 아팠구나. 이 정도 아프구나.
이렇게 집중을 하니 정작 아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 여자가 내게 웃으며 이야기해준다.
어떤 사람이 알베르게에 도착해 발에 물집에 생겼다며 너무 아프다고 불평불만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옆에서 다른 순례자가 신발을 벗는데 그에게는 발이 없었다.
의족을 끼고 걷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불평하던 사람은 더 이상 발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힘이 들다 생각할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집중해보면 사실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닐 때도 있다.
그 힘든 것이 꼭 거쳐야하는 시기라면.
독일에서 시험 기간, 논문 쓰는 기간 때 앞이 깜깜할 때가 많다.
도저히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에다가
공부를 해도 끝이 나질 않는다.
이럴 때는
"그래, 시험과 소논문이 끝은 아니잖아.
이건 네가 가고 싶은 길을 가기 위해 거쳐야하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지.
언젠간 끝이 날거야."
또 다른 일이 있을 때도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좋은 시간도 있었으니 힘든 시간도 있는 거라고. 당연한 거라고.
- 2017년 6월 15일 목요일 저녁, 괴팅엔에서 뒤셀도르프로 가는 ICE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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