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만난 가족 :: 베를린의 이란언니 파테메 Fatemeh

2018. 4. 29. 04:17일상 Alltag/가족 Familie

언니, 목요일 저녁이나 토요일에 시간 있어? 

갑자기 베를린행이 결정되었다. 베를린에 사는 파테메 언니에게 연락해 목요일 저녁이나 토요일에 시간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언니가 연락와서 혹시 잘 곳은 정했는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집에 와서 자고 가란다. 둘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겠냐고. 


계획대로라면 2시간 20분 걸리는 베를린행 기차였다. 하지만 어디 계획대로 되는 게 여행인가? 기차가 잘 가다가 Wolfsburg 역에 멈춰버렸다. 기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내려 다른 기차로 두 번 갈아탔다. 기차를 기다리는데 비바람이 쏟아졌다. 

그래도 베를린에는 잘 도착했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가까운 훔볼트 대학 도서관으로 향했다. 커피 하나 앞에 두고 몇 시간을 앉아 석사 지원 서류를 작성했다. 학교마다 지원 시기가 다른데 가장 빠른 학교가 4월 30일이라 마음이 바빴다. 깜깜해져서야 언니 집으로 향했다. 





파테메 언니와 괴팅엔 부모님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괴팅엔에서 처음 만났다. 첫 학기 오리엔테이션에서 외국인 학생과 현지가정을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듣고 신청했다. (2013/11/03 새로운 가족 meine neue Familie) 나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던 괴팅엔 부모님과 파테메 언니. 언니는 나보다 1년 일찍 괴팅엔에 왔다. 

언니의 첫인상은 '수다스러운 이란 학생'? 그때는 언니가 몇 살인지도 몰랐다. 괴팅엔 가족과 식사할 때마다 언니가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도 말이 없는 성격은 아닌데 도무지 말 할 기회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정도 괴팅엔 부모님 댁에서 언니를 만났다.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그냥 아는 사이였다. 

* 언니가 나중에 해 준 이야기인데 자기 원래 말이 많단다 ㅎㅎ 이란 가족이랑 있을 때도 말을 엄청 많이 한다고 ;) 

2학년 때 나의 독일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가 찾아왔다. 제출했던 소논문은 떨어졌고 남자친구와도 헤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논문은 다시 쓰면 되는 것이고, 그 친구랑 헤어진 것 참 잘된 일이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힘들었다. 처음으로 떨어진 시험(소논문)이라 충격이 컸다. 대학을 졸업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독일에 온 것은 대학을 다니기 위해서인데 그것이 어렵겠다고 생각하니 막막했다. 

또 가장 친했던 친구(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씩씩하던 나였다. 독일 와서 외롭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친구가 사라지니 외롭더라. 세상에 혼자 있는 게 아니라 깜깜한 우주에 혼자 있는 느낌이었다. 

다행이 나는 힘들다면 힘들다고 말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가끔 엄마는 내가 힘든 얘기 하면 약간 귀찮아 하신다 ㅎㅎㅎ) 부모님께 연락드렸다. 여름방학 때 써야 할 소논문이 있어 한국에 가지 못하지만 엄마 아빠를 꼭 보고싶다고. 그때가 5~6월이었다. 아빠가 곰곰이 생각해보셨고 부모님과 9월 추석 연휴에 스페인에서 만나기로 하셨다. 스페인 순례자 길을 함께 걷기 위해. 

그리고 내 옆에 있어 준 사람이 파테메 언니였다. 언니는 나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었고 언니 이야기(비슷한 경험: 독일에서 공부하며 힘든 점, 남자친구와 이별 등)도 해줬다. 산책길을 걸으며 이야기하고 벤치에 앉아서도 했다. 그날 그 시간이 아직도 사진처럼 떠오른다. 언니가 보기에는 내가 시험 하나 떨어져서 상심해 있는 거로 보였을 수도 있다.그때는 몰랐다, 독일 학생도 시험에 떨어지는 일이 종종 있다는 걸. 시험 떨어지면 세상 끝나는 줄 알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당연한데 남자친구랑 헤어졌다고 징징대는 거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래도 언니는 항상 내 옆에 있어 주었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와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그렇게 큰 도움이 되는지 몰랐다. 

그때부터였다. 파테메 언니가 진짜 내 언니로 느껴진 것이. 친언니처럼 파테메 언니도 나보다 세 살 많다. 독일에 온 시기도 비슷하고(언니가 나보다 1년 일찍 왔다), 학교 다니며 아르바이트하는 것,  졸업 후 독일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것도 나와 같다. 그래서 우리는 공감하는 것이 많다. 학교 공부, 알바, 취업, 전반적인 인생 계획, 친구, 남자친구 (썸 타는 사람 포함 ㅎㅎ), WG 이야기 등. 

우리 언니(한국에 살고 있는 나보다 세 살 많은 친언니)와 파테메 언니의 여동생(이란에 사는 여동생)이 알지 못하는 부분을 서로 공감해줄 수 있다. 우리 언니도 참 좋은 사람이고 나를 많이 생각해주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서 살고 있으니 외국인 학생으로서 사는 고충을 100% 이해해줄 수 없다. 파테메 언니의 여동생도. 하지만 나와 파테메 언니는 서로 이해해줄 수 있다.




너무 오랜만이야!!!

깜깜한 밤에 언니 집에 도착했다. 너무 오랜만이야!!! 껴안으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만나니 여러 가지 주제가 나온다. 즐거운 이야기 그리고 힘들었던 이야기도. 언니가 나보고 

"그런 시각으로 볼 수도 있겠다. 너 정말 긍정적이구나!!!!"  

"언니, 꼭 그렇지도 않아. 나도 누구한테 말해줄 때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데, 그게 정작 내 문제가 되면 맨날 고민하고 걱정하고 그래 ㅎㅎㅎ"

나는 긍정적이지만 걱정이 많다. 그래서 머릿속에 긍정적인 이론은 있는데 막상 상황이 닥치면 걱정이 많아진다 :-)


핑크핑크한 언니 방





다진 양파에 간고기, 건포도를 넣고 볶아 만든 이란 음식.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요거트가 느끼한 맛을 잡아준다. 

언니는 나를 위해 맛있는 이란 음식을 만들어 놓았다. 오는 길에 바나나를 먹어서 배가 안 고프다 하니 실망하는 눈치다. 

"언니, 나 여행 중에 많이 먹으면 자꾸 방귀가 나와. 지금은 배 안 고프니까 내일 먹을게." 

깔깔 웃더니 그럼 내일 먹자고 한다(다음날 맛있게 먹었다). 언니는 새로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침대를 내게 양보한다. 괜찮다고, 소파 침대에서 자도 된다고 했는데 좋은 침대에서 자란다. 덕분에 정말 잘 잤다. 환경이 바뀌면 잘 못자는데 언니 집에 있었던 이틀간은 푹 잤다. 







마지막날 토요일 아침 식사, 괴팅엔 가족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괴팅엔 부모님 순례자길 준비를 IT-Team 도와드렸던 이야기(2018/04/07 3월 후반, 그동안의 이야기), 몇 년 전 파테메 언니와 괴팅엔 부모님께서 함께 이란 여행을 하던 이야기도. 식사를 끝내고 가방 싸는 나를 지켜보던 언니가 내 (빵)도시락통을 발견했다. 

"가는 길에 배고프겠지? 잠깐 줘봐." 

언니가 정성스럽게 싸준 도시락. 알록달록 야채와 샌드위치. 샌드위치에는 치즈와 살라미가 들어있다. 오늘 함께 피자를 해먹기로 했는데 시간이 없었다. 피자에 넣을 살라미를 빵 사이에 넣어 준 언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든든하다. 










언니에게 선물한 괴팅엔 가족 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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