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하던 일이 업이 되었다

2023. 10. 8. 00:36일상 Alltag/하루하루가 모여 heute

2023.10.08 새벽 00:36 한국집 내 방

 

토요일에는 회사가 어학원으로 바뀐다. 영어, 중국어, 한국어 등 15개 언어 수업이 열린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북미 등 16개국 학생들이 참여한다. 5살 아이부터 70대 할머니 수강생까지 90여 명이 학생들이 온다. 학생 부모님과 동생들도 함께 와서 기다려서 회사는 왁자지껄한 놀이터가 된다. 한 살 아이가 아장아장 걸으며 해맑게 웃고, 오빠를 기다리는 다섯 살 아이가 색칠공부를 한다. 아빠와 아이가 함께 와서 수업을 듣기도 한다. 아이 수업은 한 시간, 아빠 수업은 두 시간이라 아이는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이랑 놀면서 아빠가 있는 한국어 수업을 들여다본다. 

 

나는 외국어 배우기를 좋아한다. 독일어와 영어, 스페인어, 스웨덴어를 재미있게 배웠고 한국어와 독일어, 영어를 가르쳐보았다. 언어를 배우고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했던 경험이 일에 도움 된다. 일하며 보람도 느낀다. 오늘은 초등학생 어머니를 상담했다. 아이가 즐겁게 영어를 배웠으면 하는 학부모에게 영어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모임을 몇 개 추천했다. 외국인들이 만든 모임인데, 그들도 한국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든 모임이라 모두에게 좋을 것 같았다. 아랍에미레이트에서 5년 동안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가족도 만났다. 아빠, 엄마, 걸음마를 시작한 여동생이 와서 7살 아이가 듣는 수업을 기다렸다. 나는 학생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가 듣는 영어 수업 뿐 아니라 다른 기관에서 하는 어린이 문화예술교육도 소개했다.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을 하다가 은퇴하신 분 상담도 했다. 동사무소에서 초급 영어를 배운 후 우리 기관 어학원 초중급 영어 수업을 신청하셨단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고려인 상담도 했다. 한국어를 중급 정도 하는데, 직장에서 러시아어만 써서 한국어 실력이 늘지 않고 있다며 승진을 위해 한국어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한국어 수업 교재를 보여주며 난이도를 설명했다. 결혼을 준비하는 한국인 남자와 일본인 여자가 찾아와 한국어 수업을 문의하기도 했다. 내가 한국어와 영어 중 어떤 언어로 설명을 해야하는지 물어보니 한국인 남자는 내가 하는 말을 자신이 일본어로 통역하겠다고 했다.

 

어학원 일이 끝나고 저녁에는 우리 기관에서 주관하는 행사에서 일했다. 주말 동안 국제교류를 주제로 큰 행사가 열리고 있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자신의 문화와 언어를 교류하는 행사다. 나는 우리 기관 부스에서 내가 담당하는 영문잡지를 소개했다. 번역가를 찾고 있었던 참인데, 마침 자원활동을 하고 싶다는 한국인 번역가를 만났다. 캐나다인 잡지 편집장을 만나 다음호 특집 기사 주제를 정했다. 미국인, 인도네이사인 잡지 기자도 만났다. 업무가 끝나고 문화 체험 부스를 구경했다. 페루 부스에서 오래 머물렀다. 인턴을 했던 과테말라에서 보던 것과 비슷한 물건들이 많았다. 인도 부스에 들러 친구에게 인사했다. 길에서 인도네시아 친구도 만났다. 한국어 수업을 듣는 아일랜드 사람을 만나 눈인사도 했다. 

 

신기하다. 즐겁게 배웠던 외국어로 일을 하고, 연구 주제인 평생교육 분야에서 실무 경험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독일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며, 다문화 사회에서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한국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지금 하고 있더라. 

 

일이라는 게 항상 즐겁고 보람찬 순간만 있지는 않다. 내 능력으로 하기 어려운 일도 있고, 너무 촉박하게 업무를 끝내야할 때도 있으며, 별것 아닌 일에 감정 상하는 순간도 있다. 나고 자란 한국이 생소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밥벌이에 포함된 일이다. Das gehört dazu. „거기에 포함된 거야.“ 과테말라에서 인턴을 하며 베드버그로 고생했던 나에게 독일인 아빠가 해주신 말이다. 내 선택에는 좋은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기 마련이다. 이 모든 일은 내 선택에 포함된 것이다. 어쩌면 삶에 이런 게 아닐까. 즐거울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으며, 신난 순간도 있고 슬픈 순간도 있으니까. 

 

오늘 하루 잘 보냈다. 신나게 잘 논 느낌이다. 내가 배우고 경험한 것을 풀어낼 수 있는 일을 만났음에 감사한 하루였다. 

 

페루 부스
문화체험 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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