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블로그 :: 시 - 어여쁜 짐승, 나태주

2022. 6. 3. 01:17일상 Alltag/시와 글과 영화와 책 Bücher

글: 2022년 6월 2일 저녁 베를린

시 낭독: 2021년 12월 29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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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쁜 짐승

 

나태주

 

 

정말로 좋은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란 말이 있다

또 사랑하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란 말도 있다

그러나 젊은 시절엔 그런 말들을 듣고서도

미처 그 말의 뜻을 깨치지 못했다

처음부터 귀를 막았는지도 모른다

정말로 사랑이란 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란 것을 알았을 때는

너무나 많은 나이를 먹고 난 뒤의 일이기 십상이다

그것은 행복이 자기한테 떠나갔을 때 비로소 

자기가 행복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 어리석음과 같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그것을 알았다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네 옆에 잠시 이렇게 숨을 쉬는 순한 짐승으로 나는 오늘

충분히 행복해지고 편안해지기로 한다

너도 내 옆에서 가만가만 숨을 쉬는 어여쁜 짐승으로 

한동안 행복해지고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 나태주 시집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 96-97쪽

 

 

 


 

 

작년에 한국에서 나태주 시인의 시집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를 샀다. 나태주 시인이 세상의 모든 딸에게 주고 싶은 시 100편이 들어있는 시집이었다. 마음에 드는 시가 나온 페이지 끝을 접어두고 몇 번을 읽었다.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 나를 사랑하는 친구들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나를 아끼는 친구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시 안에 담겨 있었다. 

 

나에게는 시에 나온 것처럼 나를 행복하고 편안하게 해주고 싶어하는 연인이 있었다. 그는 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자신의 가장 큰 기쁨이라고 했다. 나는 의아했다. 이런 사랑도 존재하나? 그와 시간을 보내며 알게 되었다. 그도 나를 통해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도 나에게 이해 받고 싶고,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어했다. 그가 특별한 점은 그가 먼저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그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자 나도 그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졌다. 그는 나에게 아름다운 사랑을 주니 나도 그에게 따뜻한 사랑을 주게 되었다.

 

우리가 사귀기 전 친구였을 때에는 내가 먼저 그에게 우정의 손길을 내밀었다. 나는 그가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고, 내 도움이 필요하면 알려달라고 말했다. 그가 감기에 걸렸다는데 몸은 괜찮은지, 일은 잘 되는지도 물었다. 그때 그는 나에게 관심이 있었지만 어떤 이유로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그에게 좋은 친구로서 연락했다. 내가 눈치채지 못했던 이유는 그가 너무나 상냥하게 나를 밀어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귀고 나서 나는 그에게 물었다.

 

"정말로 네가 나를 밀어냈다고?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때로는 나의 둔감함이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연인이었을 때 나는 그에게 <어여쁜 짐승> 시를 보냈다. '네가 해주는 사랑이야' 문자와 함께. 사랑이 끝나 아쉽다. 하지만 사랑해서 행복했다. 다행히 나는 사랑할 때 그의 큰 사랑을 느끼고 고마워했다. 나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었던 그의 사랑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너의 특별한 사랑을 알고 있다고. 나도 너를 사랑한다고. 우리는 고맙다는 말 대신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로 했었다. 참 잘한 결정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할 수 있었으니까.

 

시에 나온 것처럼 그는 내 옆에 와서 숨을 쉬는 순한 짐승이었다. 가만가만 숨을 쉬는 어여쁜 짐승이었다. 나도 그에게 그런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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