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5일 일요일 어린이날 오후 베를린
어제저녁 대화의 희열 '조수미'편을 보았다. 전화번호 하나 달랑 들고 이탈리아에 도착했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독일 첫 날을 떠올렸다. 나도 전화번호 하나 들고 독일에 도착했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경유하는 비행기가 연착되었을 때 공중전화로 가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조금 늦게 도착할 것 같다고.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했다는 조수미.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엄마를 사랑하는 그녀를 보며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나도 엄한 엄마를 미워했던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엄마한테 크게 혼난 날, 해법수학 답안지 첫 장에 깨알 같은 글씨로 분한 마음을 써 내려갔다. 엄마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그 어떤 사람이라도 상관없으니 다른 사람이 나의 엄마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다음날 아빠가 학교를 데려다주시며
"어제 해법수학 앞에 글 쓴 거 봤어. 엄마도."
슬픈 눈으로 말씀하셨다. 엄마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가슴이 철렁했다. 엄마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감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조수미 씨는 이탈리아로 유학 간 후 어머니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관계를 회복해 나갔다고 했다. 나도 타지에 살면서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엄마를 한 사람으로, 한 여성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의 삶, 엄마가 내게 해주고 싶었던 것, 그리고 엄마라는 사람.
엄마의 양육 방식이 '나에게' 완벽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최선을 다해 키워주셨다. 엄마의 방식으로 희생하면서.
엄마는 내게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말씀하셨다. 예를 들어 시험 점수가 못 나온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 없으셨다. 최선을 다했다면 그걸로 되었다 하셨다.
엄마가 나를 최선을 다해 키우신 걸 알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감사하다. 엄마도 '나의 엄마 역할'은 처음 해보셨던 거니까.
아빠가 계셔서 정말 좋았다. 엄마한테 혼나고 나면 아빠한테 푸념했다. 고등학교 때 엄마한테 혼나서 속이 많이 상했던 날, 아빠와 단 둘이 있던 차 안에서
"(한숨을 푹 쉬며) 아빠, 아빠는 어떻게 엄마랑 살아?"
참으로 버릇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나의 질문을 귀 기울여 들어주시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엄마 덕분에 악기를 하며 좋은 레슨 선생님을 만났고 예술고등학교에 올 수 있지 않았냐고. 엄마가 나를 위해 얼마나 애쓰시는지 따뜻하게 이야기해주셨다. 아빠 말씀을 듣고 나니 속상했던 마음이 풀렸다.
나는 참 좋은 부모님을 만났다. 이렇게 엄마 흉보는 글을 쓰고 있지만, 뾰족뾰족 모난 나를 엄마가 엄하게 키워주신 덕분에 지금은 동글동글한 사람이 되었다. 엄마가 나의 재능을 알아봐 주셔서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따뜻한 아빠가 항상 내 옆에 계셨기 때문에 엄마에게 혼났을 때 충분한 마음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대화의 희열 마지막 조수미 씨가 노래를 부른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으신 어머니께 드리는 선물로 앨범 '마더'를 만들었단다. '어머니의 마음'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아차! 했다. 어버이날이 벌써 4일밖에 남지 않았다!! 4월이 지나 5월이 온 것은 알았지만, 어버이날이 다가온다는 걸 잊고 있었다. 부랴부랴 인터넷에서 선물을 찾아보았다.
"너무 많이 고민하지 말자. 이건 시간싸움이다!"
종종 선물을 고르다가 지쳐버리는 나에게 말했다. 시간싸움이라고. 선물이 5월 8일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엄마 아빠가 주무시기 전 작은 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무드등을 선택했다 :-) 텍스트를 직접 작성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원래 있던 제품으로 샀다. 분위기가 따뜻하고 아늑하다.
선물만 할까 하다가 그래도 카네이션은 하나 준비해야지 하고 브로치를 샀다. 어버이날엔 옷에, 어버이날이 끝나고는 엄마 카메라 가방이나 아빠 여행 가방에 달고 다니시면 좋을 것 같아서.
동생의 조언대로 아빠를 위한 손수건도 준비했다. 땀이 많으신 아빠에게는 손수건이 필수! 어릴 적 아빠께 종종 손수건을 선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 예쁘고 하늘하늘한 여성용 손수건 틈에서 아빠 손수건을 고르느라 애 좀 썼다. 일단 꽃무늬는 빼고, 핑크빛 손수건을 빼니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무난하면서도 칙칙하지 않고, 땀을 닦았을 때 젖은 티가 별로 나지 않는 색으로 골랐다.
페이팔(독일 체크카드)로 네이버 페이 포인트를 충전하고 결제했다. 선물을 주문한 텐바이텐 1:1 고객상담에 '어버이날 선물이니 택배 박스에 영수증 빼주세요' 글도 남겼다. 완벽한 서프라이즈 선물이다! 이제 선물이 3일 후 도착만 하면 된다 :-)
5월 5일 어린이날에 부모님 선물을 사며 시간을 보냈다. 어린이날에 선물 뭐 받을지 생각만 했지 어버이날 선물 살 생각은 전혀 못했다. 엄마아빠 선물은 항상 5월 7일에 닥쳐서 샀기 때문이다 ㅎㅎㅎ 편지는 학교에서 썼고 :-) 어린이날에 부모님 선물을 샀다니! 내 자신이 기특하면서도 어른이 된 기분이다 :-)
작년 어버이날 선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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