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역시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2018. 3. 5. 11:04독일 대학과 새로운 학문 Uni/외국인 학생 생존기 Studieren

고3까지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내 옆의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조금 뒤쳐졌을 때 크게 실망했고 조금 앞섰을 때 기뻐했다. 하지만 항상 앞서는 누군가가 있었다.

경주장이 세상 전부인 줄 알았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다양한 전공을 공부하는 친구들과 기숙사에서 지냈다.

내 방을 두고 굳이 친구네 방에 이불을 들고가 밤새 이야기하기도 했다.

(시야를 넓혀 주었던 기숙사 친구들에게 참 고맙다!)


교양수업을 듣다가 사회과학 수업에 흥미가 생겼다. 영어를 더 공부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내 옆의 친구들은 다들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나도 그렇게 졸업을 했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할 용기가 없었고 정확히 어떤 공부를 해야할지도 몰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에서 언어를 공부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과연 그것을 잘 할 수 있을지.

한국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했는데 독일에 오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 잠시 떨어져보니 그들과 다른 길을 가 볼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대학에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첫 학기는 매일 멘붕이었다. 

어학원에서 배웠던 독일어와는 너무도 달랐던 대학독일어.

새로 온 도시에 집이 없어 고생도 많이 했다. 독일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왜 그리도 차갑던지.


수업에서 쭈뼛쭈뼛 잘 모르는 학생과 어색하게 이야기했다.

토론하는 수업이 많았는데 토론 주제를 이해하지 못해 그냥 듣기만 한 적도 있다.

관련 논문을 요약하여 발표할 때엔, 그 전날까지도 논문을 완벽하게 이해 못 해 밤을 샜다.

동아리에 들어가서는 쉬는 시간에 나 혼자 있었다.



그러다 조금씩 요령이 생겼다.

모르는 것은 수업 끝나고 그때그때 교수님께 질문했다.

매주 읽어야하는 페이퍼 주제를 한국어로 검색한 다음 독일어로 읽으니 조금 이해가 갔다.

그룹으로 토론할 때 미리 옆에 앉은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토론 주제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

발표 전에 교수님을 찾아가 페이퍼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여쭈어 보았다.

매주 만나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도 생겼다.

기숙사에 아늑한 방도 생겼다.

관심분야 인턴도 해보았다.


물론 지금도 완벽하지 않다. 내게 독일어는 여전히 어렵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세웠지만 그 일을 할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걱정도 된다.


이제 소논문 두 개와 학위 논문이 남았다.

공부요령이 생겼다 싶었는데 글을 쓰는 건 왜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학문적인 글쓰기는 어렵다. 독일 친구 논문을 보다가 내 논문을 보면 이렇게 써도 되나...고민된다.

참고문헌을 읽고 완벽하게 이해하여 (읽자마자 완벽히 이해되는 경우가 별로 없음) 나의 독일어로 술술 글이 써지면 (이 경우도 매우 드물다)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지금까지 해왔으니 앞으로도 잘 할거라 스스로 격려해본다.

마지막이라 더 힘든건지도 모르겠다고. 이 역시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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