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3
집이 참 좋다. 집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인 일요일 아침 7시 30분부터 아빠의 경쾌한 설거지 소리와 엄마의 빨래 계획 소리가 들린다. 나는 전날 친구와 통화하다가 새벽 3시가 넘어서 잠들었다. 일요일 아침을 알리는 부모님 대화에 결국 나는 7시 반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자가 격리하며 2주 동안 못한 빨래를 분류했다. 엄마께 세탁기 사용법을 배웠다.
나의 아침 루틴은 요가와 명상, 아침 식사 준비다. 요가와 명상을 끝내고 사과랑 토마토를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열려고 하니 아버지가 내게 무엇을 꺼낼 건지 물어보신다. 내가 답했다.
"사과랑 토마토 먹으려고."
"옆에 냉장고 문 열어봐."
아빠가 미리 아침을 준비해두셨다. 와...! 진짜 감동이었다. 아빠는 내가 한국에 와서 '좋다'는 표현을 한번도 안 하셨다. 하지만 온몸으로 표현하신다. 아침에는 딸과 아내를 위해 아침을 준비하고, 아침 식사 후에는 경쾌한 소리(솔직히 소음이 너무 크다 ㅎㅎ)로 설거지를 하신다. 전날 못한 설거지를 아침 일찍 하시는데 소리가 너무 경쾌해 내가 자고 있는 방에서도 들릴 정도다. 집에 식기세척기가 있지만 그곳은 오래전부터 그릇과 밀폐용기 보관함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가 자가격리를 끝낸 날 아버지는 나를 데리러 오셨다. 집으로 가는 2시간 40분 동안 아빠는 내게 계속 이야기를 하셨다. 평소 말이 많은 분이 아닌데 딸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셨나보다. 아버지는 말을 너무 많이 하셔서 배가 고프다며 뒷좌석에 있는 팥빵을 줄 수 있는지 내게 물으셨다. 그런 아버지께 참 감사했고 아버지가 조금 귀엽다는 생각도 했다.
친구가 내게 말했다.
"부모님이 너 한국 와서 진짜 좋아하실걸?"
나는 답했다.
"그럴까? 우리 집은 좋다고 표현하지 않거든. 정말 좋아하실까?"
친구가 말한다.
"그럼! 표현은 안 하셔도 정말 좋아하실거야."
부모님 집에 온 지 3일째 되는 오늘 아침 아버지와 뒷산에 올랐다. 한 시간 정도 걷고 내려오는 길 아빠께 물었다.
"아빠! 아빠는 내가 한국 와서 좋아?"
"좋지!"
아빠는 작은딸이 한국에 와서 좋다고 하셨다. 왜 좋은지 매우 구체적인 이유도 말씀하셨다. 이것은 아주 웃기므로 나만 알고 있겠다 ;-)
아빠는 '작은 딸 사랑한다' 말씀은 못하시지만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신다. 내가 자가 격리할 숙소에 도착하기 전 그곳을 5시간에 걸쳐 청소하셨던 분이 아빠다. 나는 아빠의 사랑을 정말로 많이 받는 딸이다. 어린 시절 집에서 작은 공주로 불리로 불리던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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