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에 빨대
2021년 9월 8일 수요일 오후 우리집 내방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가 물어보신다.
엄마: 뭐 먹을 거야?
나: 나는 사과 먹을 거야.
아침을 안 먹은 나는 사과를 먹기로 했다. 사과를 먹고 두 시간이 흘렀을까. 배가 고파 부엌으로 가 늦은 점심을 준비했다. 식탁에 놓여있는 경쾌한 맥주캔. 거기다 빨대까지.
엄마의 점심 식사가 상상된다. 등산을 다녀온 후 식탁에 앉아 차가운 맥주를 빨대로 들이켜는 엄마의 상쾌한 표정. 고등어구이를 맛있게 먹는 엄마. 식사 다 하고 그릇을 식기 세척기에 넣는 엄마. 얼음을 가득 넣은 커피 한 잔에 치즈케이크 맛 에이스 과자를 먹는 엄마.
우리 엄마는 귀여운 모순덩어리다. 매일 살을 빼야한다고 하면서도 점심 때 맥주 한 캔을 마신다. 엄마는 치킨을 좋아한다. 지난번에 내가 치킨 반 마리만 사자고 하니까 매우 서운해하셨다. 엄마는 족발도 좋아한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좋아하는 치킨과 족발을 맘껏 먹지 못한다. 다이어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매일 점심 식사 후 아이스 커피 한 잔과 치즈 케이크맛 에이스를 드신다. 저녁 사진 수업 전에 일찍 나가서 걸으신다더니 지금까지 집에 있는 엄마. 말과 행동 일치하지 않는다. 엄마는 운동의 즐거움을 모르신다. 한 번도 운동이 재미있던 적이 없었단다. 매일 새벽 가는 등산도, 저녁 산책도 싫은 마음을 의지로 이겨내신다고. 나는 운동이 재미있어서 하는데. 나는 등산이 좋고 근력 운동도 재밌다. 철봉 매달리기를 하면서도 재미를 느끼고, 친구들과 함께 하는 플랭크도 좋다.
내가 우리 엄마를 귀여운 모순덩어리라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엄마는 이렇게 모순된 행동을 하면서도 자식들에게는 다이어트 전문가처럼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한때 나는 엄마의 잔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오랜만에 한국에 계신 엄마께 전화하면 매번 다이어트 잔소리를 하시니 말이니 말이다. 나는 내가 알아서 몸에 좋은 재료로 요리하고 운동도 하고 있는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은 당신 스스로에게 하셨던 말씀이 아닌가 싶다. 이번 여름 한국에 있으면서 엄마의 모순된 행동을 지켜보니 엄마가 조금 귀엽고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평범한 다이어터였다. 매일 새벽 등산을 가는 엄마는 점심 식사 후에는 '너무 많이 먹었나?' 후회를 하곤 한다. 엄마에게 점심 식사는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다. 엄마에게는 음식이 항상 맛있다. 아빠는 조금 다르시다. 아빠는 식사 전 반주(포도주, 양주 등)를 드시는데 입맛을 돋우기 위해서이다. 엄마에게는 반주가 필요 없다. 왜냐? 엄마에게는 음식이 항상 맛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젊었을 때 한의원에 가셨단다. 거기에서 엄마는 먹는 것의 70%를 흡수하고 아빠는 30%를 흡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엄마는 아빠 만큼 먹으면 살이 찌기 때문에 항상 덜 먹어야했다. 엄마는 요리를 잘하고 맛있는 음식 먹기를 즐기지만 평생 덜 먹기 위해 노력했다. 음식을 즐기는 엄마에게 다이어트는 평생 얼마나 큰 숙제였을까?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하는 엄마인데.
나는 엄마가 다이어트를 매 순간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한다. 엄마 몸은 내가 보기에 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가 생각하는 것은 다르겠지. 엄마는 오랫동안 다이어트를 하며 다이어트가 습관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나는 오늘 점심을 먹고, 엄마의 경쾌한 맥주캔에 웃음이 나와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맥주캔 사진 블로그에 올려도 되는지 엄마 허락을 받고 남기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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