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조교 :: 독일 대학 - 악기 박물관 학생 조교의 시작

2018. 4. 16. 06:07독일 대학과 새로운 학문 Uni/학생 조교의 삶 Hiwi-Job


오늘 오후 

이번 주 월요일 여름학기가 시작되었다. 학기 첫날, 따뜻한 봄 날씨에 옷을 얇게 입고 나왔다. 바삐 학교 건물을 왔다 갔다 하다 오후에는 시내에 있는 은행에도 다녀왔다. 그리고 저녁 늦게까지 학교에 있었다.


화요일 몸이 좀 이상하다. 어제저녁에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몸이 추웠나 보다. 감기기운이 있다. 



오늘은 일요일. 일주일 내내 골골대다 몸이 좀 나아진 것 같아 악기 박물관에 나왔다. 악기 박물관은 오래된 건물 안에 있어 실내가 춥다. 밖이 따뜻해도 실내 온도는 몇도 낮다. 그래서 항상 옷을 따뜻하게 입고 온다. 겨울 재킷에 머플러를 두 개나 가지고 왔는데도 콧물이 나고 재채기를 한다. 따뜻한 차를 계속 마시는데도 춥고 눈이 뻐근하다. 화장실 가는 길 창문에 비치는 햇살이 보인다. 오늘 아침에는 구름이 껴 있었는데 이제 해나 나네!



함께 일하는 친구에게 잠시 햇볕 좀 쐬고 오겠다 했다. 건물 앞 벤치에 앉아 햇볕을 쐬었다. 평소라면 얼굴 타는 거 걱정하며 햇볕을 잘 쐬지 않는데 오늘은 상관없다. 따스한 햇볕이 고맙다. 콧물도 안 나고 재채기도 안 나온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매일 보는 장소, 매일 다니는 곳인데 이렇게 앉아서 보니 달라 보인다.












오늘 아침, 새로운 친구 헬게 Helge 

오늘 아침 악기 박물관에 새로운 친구가 왔다. 일요일마다 여는 악기 박물관에는 음악학을 전공하는 세 명의 학생이 조교로 일한다. 지금까지는 나와 리자 Lisa, 레오니 Leonie 가 함께 일했다. 오늘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리자 Lisa 대신 헬게 Helge 가 일하러 온다. 영문학·음악학 복수전공을 하는 리자 Lisa 는 영문학과에서 새로운 학생 조교를 시작했다. 영문학 학생 조교와 음악학 학생 조교 시간을 나누다 보니 악기 박물관에는 한 달에 3번씩 오기로 했단다. 레오니 Leonie 가 헬게 Helge 에게 음악학 건물 로비 불을 켜는 것부터 악기 박물관에서 하는 일까지 꼼꼼하게 설명을 해준다.














2년 전, 악기 박물관 학생 조교의 시작

긴장을 하며 레오니 Leonie 의 설명을 듣는 헬게 Helge 를 보고 있으니 나의 악기 박물관 첫날이 떠오른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된 학생 조교 일. 2학년 때 악기박물관 악기들에 대해 공부하는 수업이 있었다. 박물관 악기들 중 하나를 골라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소논문을 제출하는 전공수업. 학기가 끝나갈 즈음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악기 박물관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원래 2월부터 일하기로 한 학생이 사정이 생겨 4월부터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2개월 일 할 학생을 다급하게 구하고 있으셨던 모양이었다. 잠시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손 들었다. 교수님은 내 이름을 받아 적으셨고 얼마 후에 행정실에서 메일이 왔다.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나와 계약서를 작성했던 교수님은 악기 박물관 강의를 하신 교수님이 아니었다. 음악학에서 가장 근엄하고 무서워 보이는 교수님이었다. 평소에도 약간 거리감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교수실에 들어가며 인사를 하고 책상에 앉았다.


"교수실이 참 넓네요."

"넓죠? 가끔은 너무 넓다고 생각해요."


교수님께서는 계약서 보여주시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신 다음 중요한 부분을 읽어주셨다. 당시 나는 법률용어가 난무(?)하는 계약서 속 독일어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악기 박물관에서 들었던 말은 밖에서 하지 말고, 악기 가져가지 말라는 것이지요?"

교수님은 빙그레 웃으며 그렇다고 하신다. 교수님의 미소를 처음 보았다.




학생 조교로 일하는 첫날, 설레는 마음으로 악기 박물관으로 향했다. 수업 들으러 일주일에도 몇 번은 오는 곳인데 일요일에 오니 느낌이 달랐다. 1년 선배인 엘리자베스 Elizabeth 가 자전거를 타고 오며 인사한다. 엘리자베스 Elizabeth 와는 수업을 두 번 같이 들어서 얼굴을 알고 있는 사이였다. 음악학과 건물 문을 열고 로비 불을 켠 후 2층 악기박물관으로 올라갔다. 조금 있으니 2년 선배인 펠릭스 Felix 가 도착했다. 펠릭스 Felix 는 내가 1학년 때 들었던 Tutorium의 Tutor여서 잘 알고 있다.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일을 시작하고 몇 시간 지나 엘리자베스 Elizabeth 와 이야기를 하다 알게 된 사실. 엘리자베스 Elizabeth 아버지께서 옆 도시 카셀 Kassel 음대에서 피아노를 가르치셨고 한국인 제자이 많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마스터 클래스도 하셨다고.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여전히 한식을 좋아하시고 특히 김치를 좋아하신단다. 한국에 다녀오면서 김치를 사 오신 적도 있다고 ;-) Elizabeth는 나랑 수업을 두 번이나 같이 들으며 내가 한국인인 줄도 알았을 텐데, 이 반가운 이야기를 어떻게 지금까지 안 하고 참았을까? 내가 엘리자베스였다면 첫날 바로 한국인 학생에게 다가가 "우리 아빠가 카셀 음대에서 피아노를 가르치셨는데 한국인 제자들이 많았대. 한국에도 몇 번 갔다 오셨고. 그래서 김치도 엄청 좋아하셔~" 반갑게 인사했을 텐데. 이제 와서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니 참 독일스럽다. 독일사람들은 천천히 다가온다. 바로 다가가지 않고 상대를 관찰(?)을 한다. 아마 엘리자베스도 한국인인 내가 내심 반가웠지만 일단 기다렸나 보다. 아버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나의 악기 박물관 학생 조교 일이 시작되었다. 차이콥스키를 좋아하는 공통점을 가진 나와 엘리자베스 Elizabeth  종종 함께 음악을 들었다. 펠릭스 Felix 는 내게 학교 수업과 시험에 대한 정보를 많이 줬다. 펠릭스 Felix 도 음악학과 사회학을 전공해서 내가 그때 듣고 있었던 수업을 이미 다 끝낸 상황. 특히 악기박물관의 악기들에 대해 잘 알고 있어 펠릭스 Felix 가 악기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 줄 때마다 열심히 메모했다. 


그렇게 2~3월 일했고 그해 10월 악기박물관에 자리가 생겨서 정식으로 일하게 되었다.




+ 덧붙이는 이야기


학교를 다니며 두 번의 조교 일을 했다. 첫 번째는 지금도 하고 있는 악기박물관 일이고, 두 번째는 사회과학부 연구방법론센터에서 일했다. 두 번째 조교를 구할 때는 구인 공고 -> 지원서류 준비 -> 제출 -> 인터뷰 -> 계약서 작성 순으로 진행되었다. 사회과학부 연구방법론센터 학생 조교를 지원하면서, 악기 박물관의 조교는 정말 우연한 기회에 운이 좋게 구했구나 생각했다. 2개월 일 할 사람을 구하고 있었고 그 후 정식으로 자리가 생겨 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학과) 입장에서도 한 번 일해 본 사람을 쓰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다음 번에는 독일 대학에서 학생 조교를 지원하는 일반적인 방법(두 번째 조교 지원)에 대해 작성해보겠다.




+ 이어지는 악기 박물관 이야기


2017/05/22 - [하루] - 독일 - 쉼의 중요성

2017/05/28 - [하루] - 독일사람의 배려 - 지켜보며 기다리기

2018/02/11 - [학교] - 악기박물관 - 곰곰이 생각하며 사진 고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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